제목 | [인물] 만일 내가 아담이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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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12-14 | 조회수3,370 | 추천수1 | |
[성서의 인물] 만일 내가 아담이라면
"하느님이 왜 선악과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아니?" "그 열매를 먹으면 우리가 죽는대." "아냐 바보야. 그건 거짓말이야. 그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는 거야. 그래서 먹지 못하게 하는 거라구…."
하와는 뱀과 이야기하면서 그 열매를 힐끗 쳐다보았다. 정말 맛있고 탐스러워 보였다. 결국 하와는 열매를 따먹었다. 남편 아담에게도 따서 먹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눈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머 우리가 옷을 벗고 있네. 아이 부끄러워."
무화과 나뭇잎을 따서 앞을 가렸다. 저녁때 하느님이 산책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하느님이 무서워 나무 뒤로 숨었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이 물음들은 철학적인 물음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성서로부터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을 때 우리의 삶은 겸손해지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인간의 첫 번째 타락을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 잘 나타나고 있다. 마치 인간의 본성이 행복할 때보다 불행할 때 더 잘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보통 성서를 읽을 때 하느님의 관점에서 볼 때가 많다. 그러나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이야기다.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의 관점에서 성서를 이해하면 성서를 훨씬 가깝게 느낄 것이다. 성서 말씀의 행간(行間)을 상상해보고 인간의 눈으로 성서를 대하는 일은 흥미있다. 물론 성서의 기본적인 메시지 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다.
선악과나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비참하고 나약한 존재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한계를 지닌 피조물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 아닐까? 이 사건은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여담같지만 만약 뱀의 유혹을 남자가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인간의 차원에서 남자나 여자 모두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혹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요즘 같으면 남자를 돈이나 여자 명예나 정력 등을 미끼로 유혹할 것이다. 여자는 화려한 옷이나 보석 날씬한 몸매 예쁜 얼굴에 대한 욕망을 이용할 거란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창세기의 죄를 범하는 장면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된다. 그러나 인간 이 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와는 분명히 처음에 펄쩍 뛰었다. "에이 아니야. 선악과 열매를 먹으면 분명히 죽을 거야. 난 절대 안 먹어…. 그래도…정말 먹고 싶다…."
때로 악의 유혹은 고래 힘줄보다 질기고 솜사탕보다도 달콤할 때가 많다.
"정말 저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될까 꼭 한번 먹어볼까. 에이 뭐 괜찮겠지."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생각과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상식보다 모험을 선택했다. 열매를 따온 하와를 보고 아담도 소리쳤을 것이다. "당신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한 거야…." "여보 나를 봐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느님이 새빨간 거짓말을 한 거예요. 정말 당신을 위해 따온 열매 안 먹을 거예요?" 하와는 하느님까지도 부정하고 어느새 아담에게도 타락을 강요하고 있다. 그 뻔뻔함과 대담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란 말인가.
이젠 아담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는 하느님보다 여자를 선택했다. 맨 첫 자리에 계셔야 할 하느님이 인간의 욕망으로 저 뒷전으로 물러났다.
만일 내가 아담이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느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어요. 저 끝간 데 없는 욕망은 무엇이고 시시각각 고개를 쳐드는 욕심들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죄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정말 힘이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것밖에 되지 않습니까?"
선악과나무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간다움의 최소한의 법이고 질서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그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악의 유혹을 이기려고 발버둥이쳤지만 결국 추락하는 불쌍한 아담과 하와 다름 아닌 지금 '나'와 '너'의 모습이다.
지난주 동안 내 앞에 놓여졌던 선악과 열매와 뱀의 유혹은 무엇이었나?
[평화신문, 1999년 5월 1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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