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감수성 풍부한 울보 요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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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12-14 | 조회수3,434 | 추천수1 | |
[성서의 인물] 감수성 풍부한 울보 요셉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자주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나온다. 특히 외적으로 강하게 보이는 남자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보통의 관념을 깨고 감수성 풍부한 인물들로 등장하는 것이 성서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눈물은 감정의 카타르시스(catharsis : 정화) 작용을 시킨다고 한다. 눈물이 슬픔과 고통의 얼마간의 치유 작용을 하는 것을 우리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성서의 인물 중에서도 요셉은 참 많이 운 사람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할 수 있다. 감수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헤어진 형들과 만났다(창세기 42장). 예전과 다르게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있었고 형들은 첩자로 몰려 문초를 당하는 죄인의 자리에 있었다. 그 당시 형들은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요셉은 문초 끝에 “너희가 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막내 동생을 데려와라. 너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했다.
요셉의 말에 형들은 걱정스럽게 서로 수군거렸다. 그들은 요셉이 통역자를 통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리가 한 죄 때문이다. 우리가 동생 요셉이 살려달라고 가슴 아프게 애원하는 것을 보면서도 못들은 체 했으니 우리가 이런 곤경에 빠지는 거야….”
요셉은 형들이 옛날에 자신에게 한 못된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요셉의 울음 속에는 형들에 대한 미움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면서 울지 않았을까. 인간은 때로는 자신도 어쩔 수 없고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주위 환경 때문에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 요셉은 형들의 마음속을 읽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한계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안타깝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요셉의 형들은 선물과 돈을 마련해서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에집트로 내려가 요셉과 다시 만났다. 물론 형들은 그때까지도 요셉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요셉은 자신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형들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친동생인 베냐민을 바라다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베냐민을 보는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살아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던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이 애가 바로 너희가 말하던 막내 동생이구나 참 귀엽구나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라.”
요셉은 자신의 앞에서 무서워 떨면서 서있는 동생을 바라보다 애처로운 생각이 끓어올라 자신의 방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났을 때보다 동생을 만났을 때의 울음이 더 북받쳐 올랐을 것이다. 보통 가족과 형제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우리들도 어린 동생이 그것도 어머니 없이 어렵게 자란 동생을 타국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것을 상상한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넘어서 다시 상봉하는 부모 형제들의 만남을 곁에서 보는 이들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눈물은 단순한 감정 표현 이상의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슬퍼도 기뻐도 안타까워도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감정의 느낌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눈물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드디어 요셉은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목놓아 울었다(창세기45장). 그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이집트의 모든 사람들에게 들렸다고 다소 과장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형들 앞에서 자신이 이집트 땅에 팔려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의 목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베냐민도 그의 목에 매달려 슬피 울었다. 나머지 형들과도 입을 맞추고 붙잡고 함께 울었다.
요셉이 형들과 함께 운 것은 화해의 표지였다. 성서에서는 여러 번 요셉이 운 것이 기록되어 있다. 마음이 착하고 그리고 감수성 풍부한 요셉 그는 그 밖에 그의 일생에서 참 많이 울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억울하고 슬퍼서 울었고 때로는 고맙고 기뻐서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실 눈물처럼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들도 여태껏 살아오면서 여러 번 슬프고 서러운 눈물 기쁘고 행복한 눈물 오랜 이별과 만남의 눈물 등 여러 종류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눈물 한 망울이 때로는 수만 마디의 말보다 더 진한 감동을 안겨 줄 때도 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도 남몰래 슬픔을 삭이며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분들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시절을 사셨을 분들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인물 중에서도 요셉이 매력적이고 정이 가는 것은 눈물을 많이 흘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평화신문, 1999년 10월 3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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