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2: 코린토, 테살로니카, 필리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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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2-09 | 조회수5,109 | 추천수1 | |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2) 코린토, 테살로니카, 필리피 유럽 최초로 필리피에 복음을 전하다
- 작가노트 : 코린토의 황폐한 유적지에서 사도 바오로의 열정적 전도의 씨앗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향기로 열매를 맺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교감을 현대의 전승처럼 표현해 봤다. 또한 필리피 감옥에서 느낀 사도의 외로움과 굳건한 믿음에 대한 나의 작은 울림이다.
아테네대학을 졸업하고 병역 의무를 다하려고 간 곳이 바로 코린토였다. 사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고대 코린토 가까운 곳에 신병훈련소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행군을 했다.
사도는 두 번째 전도여행 중 일 년 반을 이곳에 머무르고, 그 유명한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 주후 56~57년에 이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이다.
폐허만 남은 고대 코린토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아카이아 지역 로마총독 갈리오의 재판정 단상 앞에 서서 사도행전 18장을 떠올렸다. 코린토의 유다 광신자들이 사도를 벌하라고 로마 총독 앞에 끌고 갔던 곳, 그 대리석 단상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 유다인들에게 고발당한 사도는 로마총독의 석방 판결을 듣고 아마 크게 고무됐으리라.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사도 18,14-15).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풀려나 전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고대 광장으로 향하는 길을 한참 가면, 아퀼라와 프리스킬라의 집과 천막공장이 있다. 코린토에 머무는 동안 사도는 자신과 일행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그 공장에서 일을 했다.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공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했으며,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그리스도를 믿는 코린토인들이 늘어난다. 유다인 회당장인 크리스포스도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코린토 교회는 이렇게 세워졌다. 이 도시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웅장한 '바오로 사도 성당'은 이 도시를 그리스도 신앙으로 이끄신 사도께 드리는 경건한 찬미와 감사의 표시다.
코린토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병역 의무를 이행한 곳 역시 바오로 사도 흔적이 남아있는 테살로니카였다. 그리스 북쪽에 있는 테살로니카는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의 여동생인 테살로니키 왕비를 기리기 위해 카산드로스 왕이 세운 도시다.
주후 50~51년에 바오로 사도는 소수 유다인을 제외한 테살로니카의 많은 우상숭배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했고, 그 결과 테살로니카 교회는 당대에 가장 활기찬 그리스도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 발전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보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 활동과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고대 도시들이 있는 그곳에는 오늘날까지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는 성당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오늘날에도 전례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 지역에 뿌리를 둔 마을뿐 아니라 모든 도시들이 바오로 사도와 연관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테살로니카와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뒤에 내가 군종신부로 봉사했던 사단이 마케도니아의 필리피 근교였다는 것도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리포스 왕에 의해 기원전 365년에 세워졌으며, 필리피라는 도시 이름은 설립자에게서 따왔다. 이 곳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유럽 최초의 도시다. 세례를 받은 초대 교인들 가운데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을 파는 리디아가 있었는데(사도 16,14)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바오로 사도와 그 일행들을 머무르게 하고, 유럽에서는 최초로 '가정집 교회'를 시작했다. 그 이후에 웅장한 성당들이 세워졌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일곱 개 고대 성당 잔해들을 찾아냈는데, 그 중 제일 큰 성당은 길이 130m에 폭 50m 규모였으며, 그 옆에 사도 바오로가 갇혔던 감옥의 흔적도 남아 있다. 사도행전에서 설명하는 그 사건 이후에 그 도시의 부호들이 사도를 그의 일행 실라스와 함께 투옥시켰던 감옥이다.
감옥 내부를 보려고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면 바오로 사도와 실라스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인내하기에 합당하게 여겨졌음에 감사해서 불렀던 찬송이 들리는 듯하다.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사슬을 풀어놓은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간수장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게 됐다(사도 16, 25-34 참조)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연에 덧붙여 사제서품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 사도가 내 삶에 특별한 분이 된 것은 바로 서품식 때문이다. 성직에 입문하기로 했을 때 내 서품식 날짜는 6월 27일로 정해져 있었지만, 갑작스런 대주교님 사정으로 정해진 날짜에 서품식을 거행할 수 없었다. 결국 서품식은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인 6월 29일 거행됐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내 생애에 깊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후 선교사가 돼 내 생애 후반부를 한국에서 보내며 여러 도시에 성당들을 건축하게 됐다. 그 중 한 성당을 인천에 세웠고, 사도 성 바오로 이름으로 헌정했다. '성 바오로 성당'은 축복받은 정교회 공동체 일원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다. 2008년에 나는 한국 풍습에 따라 서울에서 팔순 잔치를 하고, 한국대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청 '주교시노드'는 내가 한국대교구장에서 은퇴하는 것을 승인했지만, 동시에 나를 피시디아의 대주교이며 시디와 안탈리아의 주교로 선출했다.
사도행전 13장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사도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부터 소아시아에서 그의 위대한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첫 번째 전도여행을 마친 뒤 아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은 사도의 탄생지인 타르수스가 있는 킬리키아 지역과 이웃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그의 위대한 일생을 소개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에 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개인적 인연 때문이다. 주님 사랑으로 내 삶은 아뜸이신 사도와 맺어져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주님 뜻이고, 바오로 사도도 허락했으므로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바오로 사도와 나의 개인적 인연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치도록 하고, 이제 다음 글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삶과 중요한 업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평화신문, 2011년 1월 16일,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 정미연]
[인터뷰] 화가 정미연씨 - 사도와의 만남은 큰 은총이요 축복
"예수님의 특별한 이끄심이었어요."
지난해 9월 사도 바오로 전도여행지를 순례하고 삽화를 그린 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56)씨는 "터키 여행 열흘, 크레타섬 전교회 관상수도원 생활 열흘, 그리스 여행 열흘 여정을 통해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은 물론이고 정교회 수도생활의 깊숙한 속내와 문화를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비잔틴 예술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처음 알았다"는 작가는 "그 영성, 초월자의 내면까지 드러내는 표현력이 너무도 깊었다"고 순례소감을 전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의 진면목을 봤다"는 작가는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님 배려로 일반 순례자들은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수도원 안에까지 들어가 정교회의 그 깊은 영성의 맛과 향기를 고스란히 느끼고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을 접하면서 대주교님과의 인연이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정미연 작가는 또 "현지에서 바오로 사도의 숨결을 낱낱이 보고 느끼는 감동과 전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이었고, 특히 교회사 교수님들이 순례지마다 일일이 설명해줘 감동은 세 배, 네 배 컸다"고 털어놓았다.
작가는 "순례를 통해 바오로 사도의 삶과 영성이 얼마나 내 삶 속에 가까이, 또 깊이 들어왔는지 모른다"며 "삽화 연재가 끝나는대로 바오로 사도의 삶과 선교 여정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평화신문, 2011년 1월 16일, 오세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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