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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8: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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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6 조회수4,046 추천수1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 (8)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4,35-41 읽기

 

우리는 지금까지 마르코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긍정적 모습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제자들의 모습(1,16-20; 2,14 참조), 제자들의 정체성과 사명(3,13-19 참조), 예수님의 참가족의 의미(3,31-35 참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복음서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제자들의 긍정적 면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제자들의 몰이해(incomprehension)라는 모티프와 관련하여 함께 읽을 본문은 4,35-41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 복음서의 두 가지 주제인 ‘예수님의 정체’와 ‘예수님을 뒤따르기’가 함께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① 단락 나누기

 

4,1-34은 예수님의 비유와 그 설명의 모음이다. 그런데 4,35에서 시간적 배경이 바뀌어 “그날 저녁이 되자”로 표현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시고 배를 타신다. 한편 5,1은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4,35-41은 갈릴래아 호수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탄 배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다. 이렇게 단락을 나누어 문학적 단일성을 발견한다.

 

② 본문 자세히 읽기

 

먼저 본문(4,35-41)의 문학 양식과 문학 구조를 살펴보자. 본문의 문학 양식은 호수의 풍랑이라는 자연현상과 관련된 자연 기적사화이다. 그리고 본문의 문학 구조는 ‘상황 묘사, 문제 발생, 문제 해결, 결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복음서의 본문(text)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잘 짜인 하나의 천과 같다. 따라서 본문의 짜임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본문의 구조에서 ‘상황 묘사’는 단락의 시작으로, 곧 펼쳐질 사건의 중요한 요소인 등장인물, 공간적 배경, 시간적 배경 등을 소개한다. 다음 단계인 ‘문제 발생’에서는 등장인물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이 표현된다. 그리고 ‘문제 해결’ 단계에서는 앞 단계에서 생겨난 갈등이 해결되고 긴장이 해소된다. 마지막으로 ‘결과’는 단락 전체를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본문을 자세히 읽는다는 것은 이러한 본문의 구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본문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시한 문학 구조에 따라 본문을 나누면 다음과 같다.

 

상황 묘사(35-36절) :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문제 발생(37-38절) :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문제 해결(39-40절) :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결과(41절) :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본문은 예수님의 주도권으로 시작한다. 1,38에서 제자들에게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제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신다. 갈릴래아 호수 저쪽은 이방인들의 지역인 데카폴리스 지방을 가리킨다(5,20 참조). 사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쳐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다고 서술한다(4,35-41; 6,45-52; 8,13-21 참조). 6,45에서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8,13에서는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이번호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남겨 둔 채 제자들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신다. 한 배를 탄 예수님과 제자들은 운명 공동체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호수에서 거센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에 가득 차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제자들은 생명을 위협 받게 된다. 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셔서 제자들을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청하려 한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제자들은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인정한다. 이 단어는 마르코 복음서에서 열두 번 사용되는데 모두 예수님에게 적용된다. 이 말은 1,24에서 카파르나움 회당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한 말,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와 유사하다. 즉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와 ‘멸망시키러’에서 동일한 동사가 사용된다. 이 문제 발생 단계에서 생긴 예수님과 제자들의 갈등과 긴장은 어떻게 해결될까? 예수님께서는 풍랑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실까?

 

마침내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에게 명령하신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그러자 바람과 호수가 예수님에게 복종한다. 이렇게 하여 앞선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해결된다. 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예수님에게 있다. 그분은 당신 말씀으로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여기서 겁과 믿음은 대조를 이룬다. 겁은 믿음이 없음을 나타낸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있었는데도 풍랑의 위협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분이 현존하시는데도 위기의 순간에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수 있는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믿음은 중요한 주제인데, 그것은 1,15에 나타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예수님의 요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자들은 그때까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의 많은 행적을 보았지만 그분이 과연 누구신지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몰이해를 꾸짖으신다.

 

단락은 제자들의 질문으로 끝난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이 말은 1,27에 언급된 사람들의 반응과 유사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두 구절에서 더러운 영과 자연의 힘이 모두 예수님에게 복종한다. 본문의 결말 부분에서 마침내 제자들은 처음으로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질문한다. 이는 제자들의 몰이해라는 모티프와 관련 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참된 제자는 그분이 누구신지 이해하지만 본문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제자들의 부정적 모습이 드러난다.

 

[성서와 함께, 2011년 2월호, 송창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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