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10: 길 위의 예수님과 제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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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4-26 | 조회수5,340 | 추천수1 | |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 (10) 길 위의 예수님과 제자들
8,31-9,1 읽기
8,27-30(‘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은 마르코 복음서 전체에서 큰 분수령을 이룬다. 여기서 복음서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시작하시고, 그 ‘길’에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세 차례 예고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후에 시작된 그 ‘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길’에서 ‘예수님의 정체’와 ‘예수님 뒤따르기’라는 두 주제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① 단락 나누기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8,27-30)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나오는 8,31-9,1에서는 장소와 시간의 변화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9,2에서 ‘엿새 뒤’라는 새로운 시간적 배경,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새로운 등장인물, ‘높은 산’이라는 새로운 공간적 배경이 언급된다. 비록 우리가 읽는 《성경》에서 8,31-33과 8,34-9,1이 따로 떨어져 있지만, 여기서는 8,31-9,1을 하나의 단락으로 설정한다.
② 본문 자세히 읽기
본문의 문학 구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수난과 부활 예고(8,31), 둘째, 베드로의 몰이해(8,32), 셋째, 예수님의 가르침(8,33-9,1)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oJ cristov?라고 고백한 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identity)를 새로운 차원에서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수난과 부활 예고이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가 되는 것(discipleship)이 무엇인지 가르치신다. 여기서 ‘예수님 뒤따르기’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1) 수난과 부활 예고(8,31)
베드로가 당시 유다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 사상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메시아의 모습을 제시하신다. 즉 당신은 고통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라는 호칭 대신 다니 7,13-14에 언급된 ‘사람의 아들(oJ ui Jov?tou' ajnqrwvpou)’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당시 유다인들이 생각했던 정치적 임금, 승리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약하고 고통당하는 메시아시다. 그래서 당신의 그리스도 정체와 관련하여 제자들의 오해를 바로 잡으려 하신다. 새로운 메시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계획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본문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de i')’로 표현된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원로, 수석 사제,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면서 언급한 14-16장에서 일어날 것이다.
2) 베드로의 몰이해(8,32)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예고는 베드로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한다. 여기서 ‘반박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ejpitimavw(에피티마오)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들을 꾸짖으실 때 사용된다(1,25; 3,12; 9,25 참조). 그리고 곧이어 8,33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이처럼 8,32에 표현된 베드로의 반응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incomprehension) 처지를 잘 드러낸다.
3) 예수님의 가르침(8,33-9,1)
베드로의 몰이해와 반대에 직면한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다. 다른 제자들도 지금 벌어지는 사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8,33) 하고 꾸짖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과 베드로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자리는 예수님의 ‘뒤(ojpivsw mou)’이다. 이 말씀은 1,17에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용하신 ‘내 뒤로(ojpivsw mou)’라는 표현을 회상시킨다. 제자는 스승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신다. 베드로는 하느님의 일(ta?tou' qeou')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ta?tw'n ajnqrwvpwn)만을 생각하여 ‘예수님 뒤따르기’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혹자, 반대자를 의미하는 사탄으로 불린다. 이처럼 고통과 죽임을 당하는 새로운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는 수난과 부활 예고는 제자들의 몰이해와 직면하는데, 이것이 ‘예수님 뒤따르기’에 대한 가르침의 계기를 제공한다.
참된 제자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뒤따라야 한다(8,34 참조). 그리고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님과 친교를 이루는 것인데, 이것이 충만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8,35.38 참조). 제자는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 사이의 갈등(8,33 참조), ‘내’가 원하는 것과 ‘예수님 뒤따르기’가 요구하는 것 사이의 갈등(8,34 참조), 자기 목숨을 구하는 것과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믿음이 요구하는 것 사이의 갈등(8,35 참조), 세대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과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 사이의 갈등(8,38 참조)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참된 제자는 이 갈등 속에서 자기 목숨을 포함하여 무엇보다 ‘예수님 뒤따르기’와 예수님과의 친교를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성서와 함께, 2011년 4월호, 송창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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