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창세기: 일어나 베텔로 올라가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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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6 | 조회수3,085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 - 일어나 베텔로 올라가라
“아니, 결혼식이라캐서 왔는데, 신랑은 없네예.” 14년 전 제 종신 서원식에 왔던 친구 남편이 한 말입니다. 결혼식이라면 으레 신랑 신부가 있어야 하는데…. 성경(아가서 등)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혼인’에 비유합니다. 곧 하느님을 ‘나의 당신’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28,20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야곱은 영적 여정을 출발한 베텔에서 하느님께 서원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돌보아 달라고 청한 다음 그 중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을 상대로 통 큰 거래를 한 셈입니다. 지금까지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사악과의 관계에서 그분을 알아 왔는데, 이제 “잠에서 깨어나듯”(28,26) 자신의 일상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알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이라는 3인칭에서 “당신”(28,16)이라는 2인칭으로 자신과 관계를 맺으신 하느님을 부릅니다. 낯선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부부 관계를 맺었을 때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듯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내 삶에 가장 적극적 의미를 지닌 실체로서 ‘나와 그’가 아니라 ‘나와 당신(너)’으로 관계를 맺으십니다. 인격적인 하느님과 만난 것이라고 할까요. 그분은 이제 나의 대화 상대이며, 나와 함께 생활하는 분이십니다.
29,25 그런데 아침에 보니, 레아가 아닌가!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라헬을 얻는 대신 외삼촌 일을 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26 라반이 대답하였다. “우리 고장에서는 작은딸을 맏딸보다 먼저 주는 법이 없다.”
살다 보면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고향을 등졌던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향해 외칩니다.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신부의 몸값을 위해 칠 년간 일하고 얻은 아내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신부의 아버지이자 외삼촌인 라반에게 된통 속은 것입니다.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야곱은 “목놓아 울었던”(27,38) 에사우와 똑같이 묻고 있습니다. 작은딸과 맏딸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라반의 말은 결국 맏아들의 권리를 가로챈 야곱에 대한 조롱입니다. 이렇듯 남에게 행한 바를 자신이 도로 받는 것이 삶일까요?
[성서와함께, 2009년 6월호, 배미향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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