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민수기: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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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6 | 조회수3,875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민수기 -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대항하는 자와 항거하는 자를 멸하시려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신께서는 요새를 지으셨습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시편 8,1-7).
24,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모압 벌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여 패배할 것을 두려워한 모압 임금 발락은 유명한 마술사 발라암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발라암은 예언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 말씀을 전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이방인 마술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복을 받은 백성”(민수 22,12)이라고 거듭 확인시켜 주십니다.
모압 임금 발락은 화가 나서 발라암에게 이제 그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발라암이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신탁을 주는데 장차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합니다. 여기서 ‘별’과 ‘왕홀’은 모두 왕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장차 이스라엘에 한 임금이 일어나 왕국을 세우고 모압과 에돔을 정복하리라는 뜻입니다. 이는 모압과 에돔을 속국으로 만든 다윗 임금의 승리에 대한 예언이며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온갖 역경에 부딪히며 걷고 또 걸어 이제 겨우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군을 막으려는 모압인들의 계략을 아신 하느님께서 적극 개입하십니다. 마술적이고 초자연적인 온갖 장애물에서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고 성조에게서 이어온 땅에 대한 약속을 실현해 가십니다. 마침내 발라암의 신탁을 통해 이스라엘의 진군을 막으려 했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하느님의 계획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드러났습니다.
야곱에게서 솟은 ‘별’이신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십자가로 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강복만이 적대적이고 이기적인 온갖 영을 초월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걸어와 예수님께 예물을 드린 동방 박사들처럼(마태 2,9-12 참조), ‘별’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의 여정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25,1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물러 있을 때, 백성이 모압의 여자들과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2 이 여자들이 저희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에 백성을 부르자, 백성은 거기에서 함께 먹으며 그들의 신들에게 경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가까이 광야에서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르단 동쪽 가나안의 국경 지대인 시팀에 머물러 있을 때 우상 숭배의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그들은 모압 여자들과 불륜을 저질렀고, 또 그 여인들의 초대에 응하여 이방 제사에 참여하여 프오르의 신 바알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여인들은 아마도 바알 신전의 여사제들과 창녀들이었을 것입니다. 다산과 번식을 가져다준다는 남신 바알과 여신 아스타르를 중심으로 꾸며진 이 예식은 어린이 제헌과 부도덕한 성행위로 제신을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팀에 와서 처음 바알 우상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기들의 하느님을 저버리고 스스로 바알의 멍에를 메어(민수 25,3 참조), 하느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리하여 아론 사제의 손자인 피느하스가 개입하여 죄인을 엄벌함으로써(민수 25,7-9 참조) 공동체의 순수 신앙을 지키고 종교적 배타주의를 고수합니다.
바알 숭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왕국을 세운 뒤에도 계속되어 그들의 신앙을 끝없이 위협했습니다. 하느님과 바알 중 어떤 신을 섬기느냐에 따라 사회 체제가 달라집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하느님께서는 억눌리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시며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반면 바알 숭배는 왕과 힘 있는 자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지배와 피지배의 피라미드형 계급 사회를 옹호합니다. 이 체제는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와 같은 것으로 이스라엘이 바알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버리고, 그분이 주시는 자유와 생명을 포기하고 이집트의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억압과 지배, 불평등의 사회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으로 모세 율법에 따라 국가와 사회와 종교 체제를 구축합니다. 예언자들은 우상을 숭배하여 이방신들과 이방 국가의 그릇된 가치관을 따르는 이스라엘의 오류와 불의를 고발하며 하느님과 맺은 계약과 율법에 충실하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듣지 않았고 마침내 우상 숭배로 파멸을 자초하게 됩니다.
오늘날 부와 명예, 권력과 쾌락 등 현세적 가치를 절대시하는 것 역시 우상 숭배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흠숭하고, 피조물을 피조물로 대하는 가치 질서의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3,1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대로 편성되어 모세와 아론의 지휘 아래 이집트 땅에서 나와 행군한 여정은 이러하다. 2 모세는 주님의 분부에 따라 그들이 머무르다 떠난 출발지들을 기록하였다. 출발지에 따라 본 그들의 여정은 이러하다.
3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요르단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장소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민수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광야에서(브미드바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나와 에탐 광야와 시나이 광야를 지나고 모압 벌판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진을 쳤다가 거두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이 광야 체험이 민수기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정형화된 틀로 기록되어 있는 이 목록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을 뿐 아니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명에는 하느님의 발자국과 자비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들은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자기들과 함께 걸으시는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결속되고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하느님 체험이 광야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광야 여정의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하고. 죄와 고통과 죽음을 넘어 부활의 꽃을 피워 주는 근거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했듯이, 오늘 민수기는 모든 결핍과 죄와 모순 가운데에서 우리도 그분의 현존을 믿고 그분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으라고 일깨워 줍니다.
가나안 땅은 최종 안식처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해 ‘참된 안식처’를 마련하셨습니다(히브 4,1-11 참조). 그리스도교는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세상의 광야를 여행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교회헌장> 7장 참조). 교회는 광야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이스라엘처럼 주님의 현존 안에서 신뢰와 순종을 배우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형성되며 그분의 인도를 받는 공동체입니다.
민수기는 이집트의 거짓 안전과 가나안의 현세적·물질적 유혹을 극복하고 광야의 온갖 결핍 중에 하느님의 표징을 바라보며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야말로 가나안 복지의 참 자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4,11).
[성서와함께, 2010년 10월호, 서효경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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