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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신명기: 마음에 새겨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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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3,542 추천수1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신명기 - 마음에 새겨 두어라

 

 

아주 짧은 동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감동이 자주 마음속에서 되새겨집니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로 시작되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소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소년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 나무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는 분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과 투신도 이 사랑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25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해 주시어, 제가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저 좋은 땅, 저 아름다운 산악 지방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중요하고 절실한 순간에 모세가 드리는 기도(신명 3,23-29; 9,26-29; 탈출 5,22-23; 33,12-13 참조)를 대합니다. 약속의 땅을 밟고 싶은 모세의 이 애절한 기도는 40여 년을 걸어온 순례길에서 그의 유일한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기도는 후대의 전승에서 모세의 인격적 면모를 부각시키며, 그를 성경의 모범 인물로 해석하는 근거가 됩니다. 즉 모세는 백성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고통받는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3,26에서 모세가 스스로 밝히듯, 모세는 자기 죄가 아니라 백성의 죄 때문에 벌을 받습니다(신명 1,37; 4,21; 시편 106,32 참조). 성경 본문의 어떤 구절에서는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므리바에서 보인 모세와 아론의 불신에서 찾기도 하지만(신명 32,51; 민수 20,12; 27,12-14 참조), 대부분은 광야에서 일어난 백성의 반항에서 찾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빈번히 ‘주님의 종’으로 소개됩니다(신명 34,5 참조). 백성에게 쏟아진 하느님의 진노를 백성과 하나가 되어 받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구원과 죄 사함을 위하여 대신 벌을 받는다는 대속 개념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4-6).

 

《모세의 생애》를 쓴 닛사의 그레고리오 교부는 책의 끝 부분에 “그토록 많은 수고를 다 겪은 다음에야 모세는 드디어 ‘주님의 종’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 받았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현세생활에서 한 가지 목표만을 두는 것이다. 우리 행실을 보고 ‘주님의 종’이라 부르게 되는 그것이다”고 권고 섞인 주석을 달고 있습니다. 또 “논밭을 가꾸는 끝에는 그 열매를 맛보고, 집을 짓는 끝에는 거기 살며, 장사를 한 끝에는 부를 쌓고, 경기장에서 수고한 끝에는 머리에 월계관을 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성생활의 끝에는 ‘주님의 종’이라는 칭호가 돌아와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과연 신앙생활의 끝자락에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는지요?

 

4,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이스라엘은 호렙에서 약속의 땅 문턱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들을 인도해 오셨는지 회고한 다음(신명 1,6-3,29 참조), 4장부터 신명기의 가르침을 본격적으로 전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의 설교를 통해 주시는 율법을 잘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설교의 청중인 이스라엘은 때로는 단수인 ‘너’와 복수인 ‘너희’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각자는 물론 모든 이가 설교에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마치 한 사람처럼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는 감정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마음에 호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듣는 이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설교자는 모든 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순하고 분명하고 쉬우며 직접 표현하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들어라, 보아라, 실천하라, 지켜라, -하기 위해 깨어 있으라, 오늘’과 같은 몇몇 상징어를 일정하게 반복하면서 운율을 맞춥니다.

 

[성서와함께, 2010년 12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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