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판관기: 당신의 그 힘은 어디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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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1-08-26 | 조회수3,416 | 추천수1 | |
말씀과 함께 걷는다 : 판관기 - 당신의 그 힘은 어디에서
이제 마지막 판관으로 힘센 장사 삼손을 만납니다. 삼손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설화와 일화로 독특하게 엮여 서술되어 있으며, 성경 전체에서 전설적 요소가 가장 많은 긴 영웅담입니다.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는 오랫동안 그림과 음악, 소설,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재조명되었습니다. 특히 생상의 오페라에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부르는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담겨 널리 알려졌는데, 그 가사와 선율이 매혹적입니다. 학창 시절에 단체 관람했던 세실 B. 드밀 감독의 [삼손과 데릴라]도 추억의 고전 명화 중 하나로 출연 배우들의 열연에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16,17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아 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
판관 13-16장에서 소개된 삼손 이야기에는 한 편의 시나리오라고 부를 만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사건과 모험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에 등장하는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과 숱하게 전쟁을 하고 갈등을 빚었던 민족입니다. 요르단 동쪽에서 서쪽 지역으로 세력을 넓히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이스라엘은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던 필리스티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점점 심해진 시기에 삼손이 태어납니다. 그는 충동적이고 열정적이며 자기 고향 남쪽 평원 지대의 봄에 흐르는 ‘와디(하천)’같이 격정적인 남자입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작은 태양’이라는 뜻이며, 그의 마을은 벳 세메스로 ‘해의 집’을 뜻합니다. 삼손이 해처럼 곡식을 태워 버리는 일도 한 번 있었고(판관 15,1-8 참조),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햇빛처럼 반짝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사랑한 여인의 이름은 그의 이름이 뜻하는 ‘태양’과 다르게 ‘밤’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일라’와 비슷한 들릴라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지극히 히브리적입니다. 먼저 그의 출생 예고와 이어지는 출생 이야기는, 임마누엘(이사 7장 참조)이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구원사에 중요한 인물의 출생을 기술할 때 나타나는 성경의 전통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단 씨족에 속한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서 태어난 삼손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으로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에게서 구원할 인물이라고 주님의 천사가 알려 줍니다(판관 13,3-5; 루카 1,12-17.30-33 참조).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다고 서원하는 ‘나지르인’[‘나지르(nazir)’는 ‘성별된’] 서원도 히브리의 전형적 문화입니다(민수 6,1-8 참조). 삼손의 어머니는 이 서약을 주의 깊게 지켰습니다. 하느님의 강복 속에서 자라난 삼손에게 주님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그는 초인적 힘을 지니게 됩니다. 팀나에서 사자 한 마리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사건이 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후 삼손은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발견하여 먹음으로써 서약을 파기하기 시작합니다.
삼손은 한 필리스티아 여인이 마음에 들어(판관 14,3.7 참조)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결혼하였고, 잔치에 온 필리스티아인들과 내기하여 홧김에 아내를 버립니다. 삼손은 아내와 재결합하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더욱 화가 나서 필리스티아인들의 밭을 불태워 버립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몰린 삼손의 아내는 결국 동족에 의해 불에 타 죽습니다. 그는 혼인 잔치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감정싸움과 복수전의 소용돌이에 이용당했습니다. 이야기는 이 여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삼손을 통해 필리스티아인들을 쳐 죽였다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삼손과 들릴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속임수가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못 이겨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고, 머리털이 깎여 나지르인의 세 번째 서약을 파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순수한 사랑을 한 삼손에 반해 신뢰를 저버린 들릴라를 비판하는 데에만 초점을 모읍니다(그래서 이 점을 중심 주제로 삼는 작품이 많습니다). 요부 들릴라는 유혹하고 배신하는 여성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필리스티아 남성들이 삼손의 약점을 이용하여 여성들을 그들의 책략으로 끌어들였고, 여성들은 동족의 요구를 순순히 따랐던 것입니다. 사실 삼손 이야기의 초점은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의 관계에 있습니다. 삼손은 다른 판관들처럼 군사를 동원하여 적과 전쟁을 벌인 것이 아니고 여인들과 있었던 사건을 통해 적을 무찔렀습니다. 또 그는 어떤 전쟁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주님의 영에서 나오는 비범한 힘으로 적을 쳐부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주님의 카리스마를 받은 자가 하느님의 영을 무시하고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죄와 파멸을 낳는 육의 원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입니다. 삼손은 이기적이고 무절제한 열정 때문에 하느님과 맺은 서약을 잊었고,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어 결국 비극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구원 도구로 쓰이는 지도자라고 해도 품성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약하고 어리석게 잔꾀를 부려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은 살아 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 순간에 회개와 믿음의 기도(판관 16,28-29 참조)를 함으로써 후대에 ‘믿음의 선조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됩니다(히브 11,32 참조). 우리도 들릴라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성서와함께, 2011년 6월호, 김연희 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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