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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사무엘기: 사무엘아, 사무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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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4,116 추천수1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사무엘기 - 사무엘아, 사무엘아!

 

 

깊은 밤입니다. 성전에 인접한 어떤 방에서 한 소년이 자고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을 뚫는 한줄기 강한 빛처럼 한 목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뚫고 갑자기 그를 흔들어 깨웁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렇게 네 번이나 부른 바로 그 목소리 때문에 소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중대한 사건이 됩니다. 그의 생애 동안 일어나는 사건은 그의 이름을 딴 ‘사무엘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혼란한 판관 시대의 옛 질서가 물러가고,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 왕들의 역사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이처럼 사무엘기는 크나큰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지 서술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린 바로 그 성전에, 몇 해 전 아기를 갖지 못하여 낙심하는 여인 ‘한나’의 모습도 보입니다. 주님 앞에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아픔을 토로한 여인은, 마침내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갖는 은총을 입습니다.

 

2,1 한나가 이렇게 기도하였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 2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없습니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하느님 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9km 정도 떨어진, 약속의 땅의 중심에 속하는 실로 성읍이 곧 이스라엘의 옛 성소입니다. 그곳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함께 모셔온 계약 궤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실로는 수확을 감사하는 초막절 축제를 맞아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리러 올라온 많은 사람으로 혼잡하였습니다. 실로의 사제 엘리는 이 축제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두루 살피고 다녔습니다. 그 앞에 갑자기 성전 한쪽에서 기도하고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도하는 여인의 입술은 움직이고 있으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제의 눈에 여인의 모습이 거슬립니다. 사제는 여인이 축제 기간 동안 술을 많이 마셔 취한 것이라 생각하고 호되게 꾸짖습니다.

 

그러나 불행에 잠겨 있던 여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1사무 1,15). 기원전 11세기에 일어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나입니다. ‘한나’라는 이 이름은 히브리어로 ‘당신의 피조물을 굽어보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구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얼핏 보기에 이 이름을 지닌 사람과 맞지 않는 듯합니다. 한나는 거룩한 땅의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살고 있는 엘카나의 아내였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로 살았으니까요.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은 쓸모없는 마른 나뭇가지 취급을 받았으므로, 아무리 남편이 한나를 사랑하고 감싸 주어도 그의 슬프고 괴로운 마음은 위로받을 수 없었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기도에서 ‘여종’이란 핵심어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갑니다. 괴로움과 비탄에서 비롯된 기도였지만 그는 이미 하느님의 자비를 확신합니다. 1사무 2장에서는 그가 주님께 바쳐 올린 아름다운 노래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굽어보시고 아들 하나를 선물로 주시어, 마침내 ‘한나’라는 이름의 의미가 성취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날의 기도를 기억하며 한나는 그 아이에게 ‘하느님께 청하였다’는 해석이 덧붙여진 이름, ‘사무엘’을 주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이름’을 뜻합니다.

 

사무엘기 상권 앞부분과 루카 1장의 유사성은 사무엘의 탄생에서 더욱 감동적으로 드러납니다. 그가 부른 감사의 찬미가에는 ‘군왕 시편’에 가까운 부분(마지막 부분 2,9-10의 임금과 메시아 찬미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이 노래에는 무덤처럼 닫혀 아이를 갖지 못하던 태에서 생명을 싹틔우게 된 한나의 처지가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1사무 2,5-6).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찬미가는 구약성경의 ‘마니피캇’ 곧 ‘마리아 찬가’라고 불렸는데, 잘 알려진 마리아의 찬가와 비슷한 부분[“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1사무 2,1);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6-47)]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미가는 이 고대의 찬미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한나의 노래와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 참조)를 함께 읽으며 비교해 보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보면 새 시대의 여명은 항상 하느님 자비의 새로운 계시를 받아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거룩한 여인이 ‘구원의 문’처럼 맨 앞에 서 있고,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가 역사의 무대에 들어섭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을 한나로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토빗의 아내 이름도 한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맞은 여든네 살의 여예언자도 한나였습니다(루카 2,36-38 참조). 또 한나는 남자의 이름도 되었는데, 히브리어에서 한나는 ‘하나니아’의 축소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신문한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 이름도 한나스였습니다(요한 18,12-24 참조).

 

[성서와함께, 2011년 8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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