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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다, 루카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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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21 조회수5,331 추천수1
‘만남과 관계’로 본 루카 복음 - 루카 24,13-35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다


어릴 때 낮잠을 자다가 어설피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다가 벽에 있던 십자가를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었다. 너무 아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예수님이 불쌍해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뒤집어쓴 기억이 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만 계시지?’ 신앙이 뭔지 모르는 어린아이에겐 어제도 오늘도 계속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토록 처참하게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

루카(24,13-35)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믿음에 도달하는 여정을,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과 구원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제시한다. 믿음이 부족한 우리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동행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이 되는 날, 곧 안식일이 지난 첫날, 많은 일들이 일어난 예루살렘은 겉으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온해 보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순 스타디온(약 11km) 떨어진 곳인 엠마오라는 마을을 향해 힘없이 걸어가는 두 제자가 있었다. 그들은 열두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로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보고 그동안 사도들과 함께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13절의 ‘바로 그날’이란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던 날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14절). 그들의 발걸음은 마음만큼이나 무거웠다. 얼마나 많은 희망을 그분께 두었던가!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그들의 희망 또한 모두 사라졌다. 그들의 입에서는 긴 한숨과 한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시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깊은 절망에 빠진 휑하고 까칠한 제자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그분 마음에 다가온다. 나그네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빛은 그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토록 희망하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옆에 계시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16절).

복음서 저자는 ‘보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는 것(επιγινωσκω)’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그들은 나그네가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죽음의 세계에 있는 이로서 더 이상 현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단정이 부활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그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무슨 일이냐?”(19절)는 예수님의 물음에 그들은 의아해하며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생각을 설명한다. 그들은 나자렛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의 놀라운 힘을 보고 그분이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어진 위대한 예언자였음을 온 백성과 함께 믿었다(19절).

그런데 그들의 수석사제와 지도자들이 그 위대한 예언자를 넘겨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다(20절). 제자들은 예수님 죽음의 책임을 모두 유다인들을 대표하는 수석사제와 지도자들에게 돌린다. 그들은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그분이 모든 원수들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새롭게 건설하실 메시아라 믿었다.

그런데 어떻게 메시아가 그렇게 비참하고 무력하게 십자가형을 당해야 했는지! 제자들의 목소리가 떨리며 작아진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21절). 제자들에게 ‘사흘째’의 의미는 부활에 대한 희망과 연결되지 않고 예수님의 죽음이 결정적으로 끝난 실망과 포기의 순간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메시아라 여겼던 예수님에게 하느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리라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그 희망마저 온전히 사라진 순간이다.

그들은 여인들의 증언을 언급한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주더랍니다”(22-23절).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천사의 부활 예고를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엔 그들의 믿음이 충분하지 않았다.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몇몇의 제자들이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그들 또한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고 그분을 모셨던 무덤은 비어있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충분하였지만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더 큰 혼란과 낙담을 가져왔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2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책망하신다. ‘어리석은 자’란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자를 말하며,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이란 구약성경의 예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예언자들에 의해 메시아에 대한 것이 예언되었음에도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의 완고함을 꾸짖으시는 것이다.

그분은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려면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을 말씀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들은 그들의 스승을 죽이고 그들의 모든 희망을 앗아간 십자가를 생각한다. 제자들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 열게 하시어, 그들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시각을 영적인 차원으로 변화시킨다.


그리스도의 현존

어느덧 엠마오에 이르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고 더욱 깊은 관계를 갖고 싶어 예수님을 초대한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29절). 그들은 계속하려는 예수님의 밤 여행의 위험을 걱정한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며 또한 그들을 당신의 영적 식탁에 초대하신다.

그들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주셨다”(30절).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인의 자리에 앉게 했음을 가리킨다. 빵을 들고 기도하고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는 것은 가장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빵을 떼어 나누는 것은 예수님의 행위들 가운데 하나의 평범한 것이나 그것은 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예수님은 빵을 나눔으로 굶주렸던 많은 군중을 배불리셨으며(9,17), 최후의 만찬에서 그 빵은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되었다(22,19). 지금 빵의 나눔은 제자들의 믿음을 충만하게 하여 그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31절). 곧 그분이 주님이심을, ‘그분께서 살아계시다.’는 천사들의 부활 예고가 진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셨다(31절). 그분께서 사라지셨다는 것은 초자연적 사건으로 그들이 만난 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뜻한다. 보이지 않음은 부재나 죽음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빵을 뗄 때에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었고, 부재하신 듯했던 주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15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분은 믿는 이들과의 영적 만남 안에서 계속해서 살아계시며 그들의 증인이 되신다.

부활하신 분을 알아본 제자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곧바로 일어나”(33절)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려고 예루살렘에 있는 동료들에게 돌아왔다. 그곳에는 이미 열한 제자와 다른 이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34절)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었다.

새김  ‘모래 위의 두 발자국’ 이야기가 생각난다. 뒤돌아본 삶의 여정에 두 개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있었는데 시련의 때는 발자국이 하나여서 그 이유를 주님께 물었더니, ‘네가 어려움을 당할 때 발자국이 하나인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와있다. 1년 동안 많은 일들과 적지 않은 십자가가 있었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어려움이 왔을 때 주님께서는 내 곁에서 함께 걸어주셨고, 내가 걸을 힘이 없을 때는 나를 업고 가셨다.

기도  주님, 저로 하여금 침묵과 사랑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어 당신과 함께 부활을 맞게 하소서.

* 박미숙 레지나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을, 글라렛티아눔에서 수도신학을 공부했다.

[경향잡지, 2011년 12월호, 박미숙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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