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요한 복음: 나는 생명의 빵이다! | |||
---|---|---|---|---|
이전글 | [성경] 성경과 도덕 해설: 하느님 나라와 도덕 |1| | |||
다음글 | [지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6: 카나 |1|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07-01 | 조회수7,096 | 추천수1 | |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나는 생명의 빵이다! 요즈음 생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이나 타살 등 생명과 반대되는 현상도 많이 일어난다. 그러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인간이 물질문명의 발달로 편하게 살지만, 감정 순화가 잘 안 되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간 감정을 부드럽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생명의 빵”인 말씀과 성체를 먹고 마심으로써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다룰 때 두 가지는 꼭 이야기하고 싶다. 예수님께서 정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을까? 혹자는 예수님이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은 사람들이 숨겨두었던 양식을 나누어 먹은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생명의 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빵의 기적을 행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정말 빵의 기적을 행하셨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모세와 이집트 탈출, 광야생활과 만나의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즉시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 있다. 빵의 기적은 파스카가 가까운 때에 일어난다(6,4). 파스카는 그리스도 어린양의 희생적 죽음(1,29.36)을 암시하며, 이 죽음은 성찬례의 의미에 대한 기초(6,51-58)가 된다.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알려주시려고 빵의 표징을 행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빵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 한다(신명 8,15-19 참조). 그래서 예수님은 몸을 피해야 했고, 제자들을 바다로 가게끔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빵의 기적 이야기는 물위를 걸으신 기적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간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당신의 정체를 밝히시는 것도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탈출 3,14)을 알려주시는 것과 같다. 실제로, 파스카 시기에 유다인들은 이집트 탈출(탈출 14장), 만나 사건(탈출 16,35; 시편 78,24), 그리고 광야생활에 대한 성경 본문을 연구한다. 유다인들은 첫 번째 구원자인 모세를 통해 하느님이 하늘의 보물창고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오실 메시아도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릴 것이라고 해석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생명의 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다(6,35-50)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빵이다(6,45). 성경 전통에서 빵과 말씀의 관계가 잘 나타난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메시지인 두루마리를 받아 먹는다(에제 3,3). 그리고 지혜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잠언 9,5) 하고 초대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것이라는 약속도 한다(집회 24,21). 예수님은 마치 ‘지혜’처럼 모든 이를 초대한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6,35).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이사 54,13).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여야 했던 만나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상징이다. 왜냐하면 만나를 먹게 하신 이유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3)고 전하기 때문이다. 만나 사건을 통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다”(지혜 16,26). 따라서 “생명의 빵”은 예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다(6,51-58) “생명의 빵”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은유만 될 수는 없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먹다’에 대한 두 개의 동사 사용이다. 6장 53절까지는 “먹는다”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동사 ‘에스티어’를 사용하다가(6,49.50.51.52.53), 54절부터는 “씹어먹다”를 뜻하는 ‘트로고’로 대체된다(6,54.56.57.58).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동사의 변화로 믿음의 필요성에서 성체를 먹는 것으로 그 강조의 초점이 바뀐다. ‘트로고’를 반복해서 사용하여, 성체성사에서 실제적이고 육체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주는 몸을 먹는 것으로써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6,56). 두 구절을 비교하면 “영원한 생명”이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동사가 모두 현재 시제로 되어있어 매일 먹고 마셔야 함을 강조한다. “살”과 “피”는 인간의 구성요소이지만 이 요소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성체성사적 의미 안에서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다.”는 말은 구약의 파스카 이미지를 뛰어넘는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은 피를 마시는 것을 금하고(창세 9,4; 레위 3,17; 신명 12,23), 어떤 사람의 살을 먹는 것은 적대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친밀한 방법이다. 먹고 마심으로써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군중은 이러한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수군거리는데, 그것은 모세에게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비슷하다(민수 21장). 이로써 파스카의 주제 하나가 더 성취된 셈이다. 이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생명의 빵”이 말씀으로만 해석된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로 만드시려고 주시는 말씀들인데, 너무 신비한 것이어서 오직 하느님만이 깨닫게 해주신다. 어떻게 말씀과 성체의 삶을 살까?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말씀과 성체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생명의 빵”이 예수님 자체이시지만, 구체적으로 말씀과 성찬례적인 의미 두 가지로 해석되어야 함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성체 생활이란 성체를 모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신앙 때문에 못하게 된다면, 그 고통을 잘 참고 견디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적으로는 그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생활이다.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빵을 불에 굽듯이 우리의 뜻도 하느님 손에 넣어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다시 만들도록 내어드리는 것이다. 곧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바꾸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말씀으로 정화되고, 성체가 뜻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육화와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란 것을 알아차리도록 생활하는 것이 바로 말씀과 성체의 생활화일 것이다. 우리 몸이 매일 잠을 자야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매일 말씀과 성체를 먹고 마셔야만 영혼도 자라고 싱싱해진다. 어느 날 미사에 갔다가 한 꼬마의 외침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엄마 손을 잡고 영성체 대열에 나온 꼬마는 신부님의 안수만 받고 자리로 돌아오는 도중 엄마 입을 쳐다보며 “맛있어?” 하고 물어본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다. 그러자 꼬마는 더욱 큰 소리로 “맛이 있냐고~?” 외친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성체를 먹고 마시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와 감사의 맛을 느낀다면 우리 인생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기도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여행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로 먹여주신 하느님, 이제는 저희가 말씀과 성체가 생명의 빵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 이혜자 인덕마리아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요한 복음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글 이혜자 · 그림 조수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