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과 도덕 해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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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07-22 | 조회수3,181 | 추천수1 | |
[성경과 도덕 해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리와 같이 이어진 수많은 사람이 우리에게까지 신앙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우리가 믿어야 할 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복음에 이미 들어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복음 전파자들은 그들이 처한 시대와 상황 안에서 그 복음에 따른 삶을 제시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두 가지 예를 보고자 합니다. 여러 교회 공동체들에게 권고하며 신앙인의 삶을 가르쳤던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 박해 시대를 살아가면서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했던 요한 묵시록이 오늘 우리가 귀를 기울일 책들입니다. 바오로, 은총으로 변화된 삶 바오로 사도의 출신에 대해 잠깐만 생각해 봅시다. 그는 본디 열렬한 바리사이였고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회심을 하고는 밑바닥부터 변화됩니다. 이 변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구원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된다는 것, 이 깨달음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새롭게 알게 된 하느님은 은총을 베푸시는 하느님, 인간이 의롭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을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보내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교회들을 세우며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가르쳤을 때에 그가 먼저 율법이나 계명을 요구했을 리는 없습니다.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에게 계명보다 앞선 것은 하느님 은총의 체험이었습니다. 물론 바오로 서간들에서는 성경의 어떤 부분보다 더 상세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한 가르침들을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들을 통해서 여러 공동체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자들에게 이런저런 삶이 요구되는 것은 -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들이 그렇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자신도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갈라 2,19-20)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권고를 하면서도, 그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은총,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체험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점은 바오로 사도가 편지를 쓰는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도는 대개 편지 앞부분에서 복음의 내용을, 곧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편지 뒷부분에서,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도 그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지요. 바오로 사도에게서 그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였고, 그가 신자들에게 가르친 삶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또 하나의 율법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선행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 사랑의 체험은 분명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머리로만 하느님을 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에게 베푸신 구원을 알았다면 그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요한 묵시록,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그리스도인들 제가 「성경과 도덕」을 처음 읽을 때에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이 이 묵시록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완성의 그날을 그려 보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맺어주신 계약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된다면, 이제 그 계약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묵시 11,15-18 참조). 그때에, 새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21,3 참조). 하느님의 나라, 당신의 백성. 요한 묵시록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1,5-6). 바오로 사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먼저 베풀어주신 은총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금 특별히 주목하려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선물이고 은총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협력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원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에 의하여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이루는 것은 그들이 죄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고 당신 나라를 이루도록 하시는 그리스도께만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그 완성을 위하여 회개가 촉구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이 세상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중간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묵시록은 그것을 가리켜 사제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특별한 호칭은 … 하느님의 계약에 따른 계획과 역사 속에서 그 나라를 최종적으로 이룩하는 실현 과정 사이에서 그들이 맡고 있는 중재 역할을”(70항)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왕국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실현되어야 할 것인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천국이라면 우리는 악에 맞서 싸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유혹도 없고 선택의 갈등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묵시록에서는 우리가 어떤 일들을 통해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고 그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 첫째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열렬한 기도는 하느님 앞으로 오르며, 하느님께서는 역사에 개입하심으로써 이에 응답하십니다. 둘째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선택할 때,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에 반대되는 이 세상의 체제들을 고발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묵시 19,8)입니다. 묵시록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아마포라고 부릅니다.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는 교회는, 완성의 그날에 어린양의 신부로서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 그 아마포로 혼례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넷째는 지혜로운 역사 해석인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종교적 가치와 원칙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이에 비추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인간 역사 속에서 확대되어 가는 하느님의 선물인 계약은 역사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갑니다. 바오로 사도에게서나 요한 묵시록에서나, 먼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은총에 응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입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하느님 나라의 사제로서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부름 받은 고귀한 소명인 것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2년 7월호, 안소근 실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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