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7: 타보르 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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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07-22 | 조회수4,865 | 추천수2 | |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7) 타보르 산 갈릴래아 지방에서 잘 알려진 산으로는 북쪽의 헤르몬 산, 남쪽의 카르멜 산과 타보르 산이 있다. 이중 타보르 산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거룩한 변모의 산으로 불리며 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이 산이 복음서(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에 나오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위치와 지형 갈릴래아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나자렛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타보르 산은 해발 588m 높이의 원뿔 모양의 산으로서 이즈르엘 평야보다 450m 높이 솟아 있다. 평지에서 우뚝 솟은 이 산의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매우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수와 요르단 강 계곡이 있고, 남쪽으로는 이즈르엘 평야와 사마리아 산악 지대가, 서쪽에는 나자렛과 카르멜 산, 북쪽에는 헤르몬 산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타보르 산은 즈불룬, 이사카르, 아세르 지파 영토의 경계를 이루었다.(여호 19,23-34) 타보르 산은 히브리어로 하르 타보르, 즉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실 타보르 산은 일찍이 경신례의 장소로 사용되었다.(호세 5,1; 신명 38,18-19 참조)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타보르의 명칭이 기원전 3000-500년 사이 이 지역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신 타무즈(Tammuz)의 다른 이름인 “티비라(Tibira)”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구약성경의 타보르 산 판관 4,6-24에 따르면, 판관 드보라와 장수 바락이 가나안 임금 야빈의 군대와 벌인 전투에서 타보르 산이 언급된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타보르 산으로 올라갔다는 보고를 시스라가 들었다. 그러자 시스라는 자기의 온 병거대,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에게 있는 전군을 하로셋 고임에서 키손천으로 소집하였다. … 그리하여 바락이 그 만 명을 거느리고 타보르 산에서 내려갔다. 주님께서는 시스라와 그의 온 병거대와 온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다.”(판관 4,12-15) 이와 같이 가나안족의 병거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기지 못하였다. 사실 고고학적인 탐사 결과 기원전 1000년경의 폐허가 타보르 산 정상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위용을 “산들 가운데에서는 타보르 같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 같은 자”로 표현한다.(예레 46,18) 그리고 시편 89,13은 갈릴래아 지방의 타보르 산과 헤르몬 산을 “북녘과 남녘을 당신께서 만드시니 타보르와 헤르몬이 당신 이름에 환호합니다.”로 노래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타보르 산에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안티오코스 3세가 기원전 218년에 점령하였다. 그리고 알렉산더 얀내우스(103-76년)는 스키토폴리스, 가다라 등과 함께 타보르 산을 통제하였다. 한편 창세 14,17 이하에 따르면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인 멜키체덱이 사웨 골짜기 곧 임금 골짜기에서 아브라함을 만났다. 사실 우리는 이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중세기의 전설에 의하면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을 만난 곳이 바로 타보르 산이라는 것이다. 12세기 초반의 순례자 아봇 다니엘(Abbot Daniel)이 타보르 산의 한 동굴에서 멜키체덱이 살았다고 주장하였다. 신약성경의 타보르 산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곳을 마태 17,1와 마르 9,2는 “높은 산”이라 하고, 루카 9,28은 단순히 “산”이라고 언급한다. 즉 복음서들은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는다. 마르 9,2-6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높은 산은 어디일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갈릴래아 지방에서 일어난 것으로 소개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데 헤르몬 산과 타보르 산이다. 사실 비잔틴 시대에도 이 두 가능성을 두고 유동적이었다. 에우세비오(340년 사망)는 두 곳 중에 하나를 확정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보르도(Bordeaux)의 순례자들(333년)은 올리브 산을 생각하였다. 그런데 348년에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루스는 타보르 산을 주님의 거룩한 변모의 산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와 예로니모가 이를 확증하였다. 이보다 앞서 326년에 이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타보르 산 정상에 경당을 세웠다. 요세푸스의 타보르 산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다인들의 제1차 봉기 때 갈릴래아 유다인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요세푸스는 타보르 산에 성벽을 구축하였다.(『유다 전쟁사』 2권 573) 그는 로마 군대가 갈릴래아를 공격할 것을 예견하여 여러 지역에 성벽을 만들었던 것이다. 중요 순례 장소
타보르 산에는 기원 후 4세기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들었다. 6세기경 큰 성당이 세 개 세워졌으나, 페르시아군에 의해 614년에 파괴되었다. 그후 십자군과 이슬람이 서로 번갈아 차지하다가, 마침내 1631년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산 정상에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하였다. 현재 타보르 산 정상은 가톨릭 지역과 그리스 정교회 지역으로 나뉜다. ①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현재의 성당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1919년에 짓기 시작하여 1924년에 완공한 것으로 성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들 중의 하나이다. 성당 정면 양쪽에는 두 개의 종탑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각각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 안 정면에는 중앙 제대가 있고 복음서의 변모 이야기가 모자이크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성모님께 봉헌된 제대, 오른쪽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중앙 제대 아래에도 아름답게 꾸며진 경당이 있다. ② 그리스 정교회 엘리야 성당 그리스 정교회 지역에는 1911년에 세워진 엘리야 성당이 있는데, 붉고 둥근 지붕을 가졌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 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2년 7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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