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모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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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03 | 조회수3,659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모세 (1) 탈출기 1장 8절에는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이 임금은 이집트 19왕조의 ‘람세스 2세’(BC 1279-1213 재위)로 보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약화시키려 끊임없이 강제 노동을 시켰고 나중에는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람세스 2세는 왜 이런 잔인한 정책을 펼쳤을까? 당시 이집트는 고대사회의 곡창지대였다. 나일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농토에선 풍부한 곡물이 생산되었고 이집트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인접 국가들은 이곡물을 탐냈다. 특히 ‘히타이트 제국’은 틈만나면 이집트를 침입해 왔다. 히타이트 제국은 구약성경에선 ‘헷 족속’으로 나온다.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 일대를 장악했던 강력한 고대국가다. 람세스 2세는 재위 66년 동안 여러 차례 히타이트와 전쟁을 치렀고 기원전 1286년에는 시리아의 카데쉬(Kadesh)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을 팔레스티나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국경지대에 살고 있었다.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처음 정착했던 곳이 나일강 하류 동쪽의 ‘고센(Goshen)지방’이었던 것이다.(창세 47,6) 이 지역은 이집트의 관문이었다. 팔레스티나에서 이집트를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했다. 전쟁이 일어나 이집트가 침공을 받아도 고센지방이 먼저 부딪치게 되어 있었다. 이집트 방어의 최전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세력이 커지자 이집트는 고민하게 된다. 원래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이다. 이들이 만약 히타이트 제국과 내통하게 된다면 이집트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것이 강제노동을 통한 세력약화와 태어나는 사내아이의 제거였던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기원 전 13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다. 그 증거로 람세스 2세의 후계자였던 ‘메르넵타’ 왕이 세운 전승비(戰勝碑)가 1896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비문에는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성서 밖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록에는 이스라엘이 이미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메르넵타(Merneptah)는 람세스 2세의 13번째의 아들이었다. 즉위 3년만인 BC1232년 팔레스티나에 침입하여 히타이트 제국의 영향력을 차단시켰고 이스라엘에도 막강한 피해를 입혔다. 그는 또 지중해 연안의 여러 민족이 나일강 하구로 침입해오는 것도 격퇴시켰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들이다. 기념비에는 기원전 1229년에 세운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것은 기원전 13세기 중엽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008년 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성경 속의 인물] 모세 (2) 모세는 ‘람세스 2세’ 때 태어났다. 그러니까 기원전 13세기 중엽의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곤궁에 처해 있을 때 등장한다. 유다인의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강물에 던지라는 왕명이 있던 시기였다. 다음은 탈출기 1장 22절이다.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
하지만 모세의 부모는 왕명을 어기고 그의 탄생을 신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일강 갈대밭에 숨겨두고 키웠다. 어느 날 물놀이 나왔던 파라오의 딸(공주)은 상자에 담긴 아기를 발견하자 유다인의 아기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왕궁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로 선언하고 당당하게 키웠다. 하느님의 개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왕궁에서 자랐다. 당연히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주님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세를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성인이 되었고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자연 동족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날 유다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보다 못해 죽이게 된다. 아마도 그 사람은 유난스레 히브리인을 괴롭혔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 일로 모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시나이 반도를 건너 아라비아의 ‘미디안’으로 도망을 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 사제의 딸 ‘치포라’와 결혼하여 평범한 목동으로 변신했다.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려했던 궁중생활을 돌이켜 보진 않았을까? 아무튼 미디안에서의 생활은 모세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숨어 지낸 세월이었다. 하느님께서 다시 그를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탈출기 3장은 모세가 소명을 받는 내용이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를 부르시고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하지만 모세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그는 이미 미디안 생활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과 확신을 주시어 모세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이후 모세는 민족 대이동의 주역이 되었다. 그런데 성경 밖의 자료에서는 모세에 관한 기록이 없다.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어떤 비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집트의 고대문헌에서도 모세에 관한 언급은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모세 시대의 이집트는 수많은 노예들을 거느렸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기에 불과 수천의 노예들이 빠져 나간 정도야 역사에 기록될 만큼 심각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란 견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볼 때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었고 그 모든 일의 주역은 모세라고 보았던 것이다. 탈출기 2장에는 모세라는 이름이 ‘물에서 건지다.’ 즉 히브리어 마샤(mashah 잡아끌다)에서 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200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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