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사무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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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03 | 조회수4,335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사무엘 (1) 사무엘은 모세에 필적할 만큼 이스라엘의 위대한 인물이다.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던 신정(神政)정치를 사람이 다스리는 왕정(王政)체제로 바꾼 인물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이다. 그러면서 예언자였다. 사무엘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원래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 엘카나와 함께 당시 중앙 성소(聖所)였던 실로(shiloh)를 향해 순례를 떠난다. 목적은 아이를 원하는 기도를 바치기 위해서였다. 부부는 순례 내내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만약 아들을 주신다면 주님께 바칠 것을 맹세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가 사무엘이었다. 사무엘기 상권 1장 20절에는 이름이 풀이되어 있다. ‘주님께 청을 드려 얻은 아기’라는 뜻이다. 어머니 한나는 약속대로 사무엘이 젖 땔 무렵이 되자 그를 성전에 봉헌했다. 하느님께 바친 사람, 즉 ‘나지르인(Nazirite)’인으로 키울 것을 서약한 것이다. ‘한나’라는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말 ‘우아하다(Chene)’에서 왔다고 한다. 성모님의 어머니 ‘안나’는 한나의 라틴어식 발음이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 ‘엘리’는 사무엘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교육시키게 된다. 엘리는 자녀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행패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왕이 없던 시절이라 대제사장의 권한은 막강했었다. 사람들은 엘리의 가문이 끝장났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이 등장한 것이다. 엘리는 사무엘을 후계자로 점지하고 기대를 건다. 엘리가 죽자 사무엘은 그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다. 하느님의 ‘카리스마’가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은 즉각 이스라엘에 산재해 있던 우상 타파에 몰두한다. 민족의 시련은 우상숭배로 인한 보속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다스리는 동안은 유다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민족의 침입도 없었다. 사무엘은 나이가 들자 자신의 ‘두 아들’을 판관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와 달랐다. 뇌물을 받고 바르지 못한 판결을 자주 내렸던 것이다. 결국 이것이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지파의 대표들은 판관들이 산발적으로 다스리는 통치에 싫증을 느끼고 왕이 다스리는 체제를 원했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체제전환의 주역으로 나서 줄 것을 거듭 청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거절한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처럼 왕을 가지면 하느님의 다스림을 망각할 수 있다며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대표들은 막무가내였다. 힘이 부친 사무엘은 백성들의 청을 수락한다. 그리하여 ‘미츠바’라는 곳에서 전 회중을 모아놓고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선언했다. 그가 벤야민 지파 출신의 ‘사울’이다. [2008년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성경 속의 인물] 사무엘 (2) 판관시대 말기로 접어들자 이스라엘에는 불신앙이 완연해졌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신앙공동체를 흔들었다.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지파간의 연대마저 이기적으로 변해갔고 개인주의가 넘쳐났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사무엘이었다.
당시 가나안 지방은 ‘블레셋 족’의 무대였다. 그들은 철제무기와 빠른 기동력으로 팔레스티나의 강자로 군림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했다. 하느님의 선민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때는 그들에게 ‘계약의 궤’마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의 신앙 재건에 착수한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파의 대표들을 ‘미츠바’에 모아놓고 우상숭배를 끊고 야훼께 돌아올 것을 명령한다. 그들은 따랐다. 잡신들의 우상을 부수고 공동체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무엘은 베텔과 길갈과 미츠바를 돌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감시했다.(1사무 7,3-17) 그는 대제사장이면서 판관이었고 예언자의 직분을 지닌 최초의 인물이었다.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지자 자신의 아들들을 판관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와는 달랐다. 뇌물에 넘어가 엉터리 판결을 내리기도 하고 이권에 개입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연히 지파의 대표들은 앞날을 걱정했다. 사무엘이 죽은 뒤 ‘다시 돌아올 혼란’을 염려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왕정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세워 주십시오.”(1사무 8,5) 그들은 계속해서 강력한 왕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을 뽑는 행위’를 야훼께 대한 불충으로 간주하고 거절했던 것이다. 그러자 하느님의 계시가 내렸다. “백성들이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주어라.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주어라.”(1사무 8,9) 사무엘은 마음을 바꾸고 첫 임금이 될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가 벤야민 지파 출신의 ‘사울’이었다. 사무엘 전서 9장은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을 소설처럼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에는 하느님의 철저한 개입이 숨어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뒤, 사무엘은 지도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008년 12월 7일 대림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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