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사르곤 2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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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03 | 조회수4,616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사르곤 2세 사르곤 2세는 기원전 722년,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임금이다. 그는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 그곳에 살던 주민 3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이방인을 이주시켜 혼혈도시로 만든 인물이다. 당시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의 침공에 맞서 3년을 버티었다(2열왕 17,5). 사르곤 2세는 이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스라엘의 저항에 ‘이를 갈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처음 사마리아를 포위한 임금은 ‘살만에세르 5세’였다. 그는 사르곤 2세의 친형이자 오랫동안 북 이스라엘을 괴롭힌 티클랏 필에세르(2열왕 15,29)의 장남이었다. 사마리아가 삼년을 버티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왕이 교체된 것이다. 역사가들은 사르곤 2세가 형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곤은 아시리아어로 ‘샤루킨’(Sharrukin)을 히브리말로 음역한 것이다(이사 20,1). ‘정통 왕’이란 의미라고 한다. 아무튼 형을 밀어내고 왕이 되었기에 사르곤 2세는 계속 전쟁을 벌였다. 외세와의 투쟁으로 내부분열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사마리아를 괴멸시킨 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격파했고(BC 720) 아르메니아와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까지 정복했다. 마침내 바빌론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아시리아 제국’을 이룩했다. 이후 그는 수도 ‘니네베’ 대신 새로운 수도를 만들려고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였다. 기원전 712년에 시작해서 5년에 걸친 대역사였다. 중노동은 포로들의 몫이었다. 사마리아에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도 대거 참여했다. 기원전 707년 도시는 완성되었고 ‘사르곤의 도시’라 불렀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수메르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불꽃같은 일생이었다. 그의 아들 ‘산헤립’이 뒤를 이었다. 사르곤 2세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자 남쪽의 유다는 즉시 이집트와 손을 잡고 연합전선을 폈다. 이집트는 유다를 방패막이로 삼아 자국을 보호하려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유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집트의 간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집트는 조공을 요구하며 압박했고 군사들과 상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대거 투입했다. 선민 이스라엘은 이렇게 초라한 민족으로 전락했다. 북쪽은 멸망했고 남쪽은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모두가 예언자의 충언을 무시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였다.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은 ‘호세아’였다. 그 역시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지만 9년 만에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고 물러났다. 그는 포로가 되어 니네베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이렇게 해서 19왕이 200년 이상 다스렸던 이스라엘은 막을 내렸다. [2009년 8월 2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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