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속의 인물: 바빌론의 포로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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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05 | 조회수5,351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바빌론의 포로생활 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기원전 538년에 끝난다.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포로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차례에 나누어 바빌로니아를 떠났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남아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았다. 이들이 최초의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처음 끌려간 것은 BC 597년이다. 이 해에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여호야킨’ 왕을 사로잡는다. 그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약탈한 뒤 새로운 임금을 임명했다. 그가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다. 그리고 여호야킨과 그의 가족을 끌고 갔다. 대신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수천의 젊은이들 역시 포로로 끌려갔다(2열왕 24,14). 두 번째는 치드키야의 무모한 도전으로 이스라엘 왕조가 끝났을 때다. 화가 난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 성전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주민들과 싸움이 가능한 모든 남자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기원전 586년의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길게는 60년이고 짧게 잡아도 48년 동안이다. 유배 중 유다인들은 종교예절을 금지당했다. 수입과 노동력은 착취당했으며,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댈 언덕은 오직 ‘야훼 하느님’뿐이었다. 다행히 바빌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모여 살게 했다.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덕분에 유다인들은 개별적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괴로웠다. 왜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해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율법에 충실해야 다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 믿었다. 유배지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가족 중심의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현실만을 보던 시각에도 변화가 왔다. 비로소 사후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떠돌아 다녀야 하는 그들의 운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나고게’(유대교 회당)가 처음 시작된 것도 바빌론 유배 때다. 다윗 이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성전 파괴는 제사 드릴 장소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달래며 바빌론에서도 안식일과 축제일을 지켰다. 할례는 더 철저하게 시행했다. 이런 모임이 발전하여 시나고게가 된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 유다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뭉쳤다. 만남과 교육의 장소로 발전시킨 것이다. ‘회당장’에게는 엄청난 급료를 지급했다. [2009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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