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속의 인물: 산헤드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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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13 | 조회수2,978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산헤드린 산헤드린(Sanhedrin)은 유다 ‘최고의회’(마태 5,22)로 희랍어 쉬네드리온(synedrion)을 음역한 것이다. 희랍인들은 토론을 좋아했다. 쉬네드리온도 ‘대여섯 명이 모여 토의한다’는 의미다. 훗날 이말은 ‘의회’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고 유다인들도 그렇게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산헤드린의 임원은 71명을 유지해왔다. 모세를 보좌했던 ‘칠십 명의 원로’(탈출 24,1)를 표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헤드린의 임원은 대제사장과 원로 그리고 율법학자였다. 어떤 비율로 구성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바리사이파에 속한 원로들의 발언이 강했던 것 같다. 이들은 순수 이스라엘 혈통에 도덕적 흠이 없어야했고 율법과 언어에 능통해야 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재판관도 겸했고 종신직이었다. 이렇듯 산헤드린은 팔레스티나뿐 아니라 유다인이 정착한 곳이면 어디서나 영향력을 행사했다. 산헤드린의 주요 업무는 할라카(Halakha) 곧 유다인의 ‘일상 법’을 공표하는 일이었고 대제사장의 임명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성전 예절에 관한 것은 모두 집전할 수 있었지만 속죄제(욤 키푸르)만은 거행할 수 없었다. 속죄제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을 대제사장이라 했던 것이다. 최초의 대제사장은 모세의 형 ‘아론’ 한 사람이었지만 솔로몬 시대에는 18명으로 늘어났고 예수님 시대에는 60여 명이 있었다. 산헤드린의 판결은 벌금형이 주를 이뤘고 가끔은 실형도 선고했다. 하지만 로마시대에는 집정관인 총독의 재가를 받아야 실형이 가능했다. 예수님께서도 ‘최고의회’에 끌려 가셨고(마태 26,59) 사도들 역시 그곳에서 신문을 받았다(사도 4,15). 의장은 언제나 대제사장이 겸임했고 이런 이후로 마카베오 시대부터 제사장들은 새로운 권력층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기원전 63년부터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자 산헤드린은 5개로 통합되었고 ‘예루살렘 산헤드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차츰 정치세력화 되어갔고 유다인의 모든 문제에 자문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기원후 66년부터 시작된 ‘유다 독립전쟁’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전쟁이 끝나는 70년 이후 산헤드린은 공적으로 해산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2011년 3월 6일 연중 제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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