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아람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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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13 | 조회수3,045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아람족 이스라엘 백성은 수확 후 햇곡식을 바칠 때 신앙고백을 함께 했다. 신명기에는 모범 기도문이 남아 있는데 아람인의 후손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는데 이집트로 내려가 크고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학대하고 괴롭혔습니다. 저희가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기적으로 끌어내주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저희가 바칩니다.”(신명 26,5-10)
이렇듯 가나안 정착 초기의 이스라엘은 아람인과 구분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같은 혈통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며느리로 아람 여자인 레베카를 선택했다(창세 25,20).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 역시 아람출신의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고 이들의 자녀가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다. 이처럼 아람인은 히브리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 무렵의 이스라엘은 민족적 특성이 없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았고 양떼를 따라 다니는 유목민이었다. 땅도 집도 없었고 보장된 내일의 삶도 없었다. 평범했던 이들이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통해서다. 동족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뭉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출애굽 사건 이후라 할 수 있다. 이후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길을 걸었고 아람인과도 완전히 구분되었다. 그러면서 두 민족은 사이가 벌어졌고 서로 이방인 취급을 하였다.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며, 수없이 싸우기도 했다(1열왕 20장). 이들의 중심지는 다마스쿠스였고, 오늘날의 시리아는 이들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다. 문둥병에 걸렸다가 예언자 엘리사를 만나 완쾌된 ‘나아만’ 장군은 아람국의 군인이었다(2열왕 5,1-19). 아람족 역시 유목민이었으며, 기원전 14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시리아에 정착했다. 이들은 이집트와 히타이트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지점에 있었기에 오리엔트 무역을 좌우하는 상업도시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다마스쿠스다. 훗날 아람어는 상인들을 통해 인접국가로 퍼져나갔고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는 외교용어로 사용했다. 그러다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면서 그리스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 [2011년 10월 23일 연중 제30주일(전교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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