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예수 그리스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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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0-14 | 조회수3,538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예수 그리스도 (1) 예수(Jesus)라는 단어의 출발은 희랍어다. 신약성경이 희랍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로마가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문화는 희랍이 앞서 있었다. 따라서 제국 내에서 통용되던 언어도 코이네(koine)라 불리던 희랍어였고 이 언어로 신약성경이 기록되었다. 이 현상은 4세기까지 이어졌고 교회문헌도 지역에 관계없이 희랍어였다. 그러다 로마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그들의 말인 라틴어가 4세기 초부터 주류언어로 자리잡게 된다. 이때부터 교회용어도 라틴어로 서서히 통일되어 갔다. 희랍어와 라틴어가 같이 쓰는 예수스(Iesus)는 히브리어 여호수아(Jehoshua)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예수스는 여호수아의 희랍식 발음이면서 라틴식 발음이다. 예수의 어원이 되는 여호수아는 접두어 Je에 Hoshea란 단어가 붙은 말이다. Je는 주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호세아Hoshea는 구원을 뜻한다. 직역하면 ‘주님 구원’이란 의미가 되겠다. 민수기에 의하면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모세였다(민수 13,16). 신약성경에서는 ‘나자렛 예수’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름 앞에 그가 살던 지명을 명시하는 것은 당시 풍습이었다. 한편 ‘요셉의 아들 예수’(루카 4,22)라고도 불리었고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라고도 불리었다. 예수님 이름 뒤에 붙는 그리스도 역시 희랍어 크리스토스(Christos)가 원형이며 크리스투스(Christus)는 라틴어로 번역된 말이다. 앞서 신약성경은 희랍말로 쓰였다고 했다. 따라서 크리스토스 역시 히브리말 마쉬아흐(메시아)를 번역한 것이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다인의 종교적 전통에 의하면 왕이나 예언자 혹은 제사장들은 기름부음을 받아야 공식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희랍어 크리오(chrio)는 ‘기름 붓다’라는 동사다. 크리스토스는 이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에게 이 단어를 적용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의 메시아라는 해석이다. 한편 기독(基督)은 그리스도를 한자 표기한 것이며, 예수의 한자표기는 야소(耶蘇)다. 그리스도교 신자를 뜻하는 크리스천은 영어의 Christian을 한글 표기한 것이다. [2012년 6월 10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예수 그리스도 (2)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되는 AD는 예수님 탄생 이후를 뜻한다. AD는 ‘Anno Domini’의 약자로 ‘주님의 해’라는 뜻이다. 이렇듯 AD는 서력기원(서기)의 출발점이다. 6세기 중엽,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1세는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에게 교회달력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매년 바뀌는 부활절 날짜를 간단히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디오니시우스는 이미 사용되고 있던 ‘로마 달력’을 모델로 ‘교회 달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로마력 754년을 AD 1년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로마력 754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AD 원문은 ‘Anno Domini nostri jesu christi’였다. 직역하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다. 이후 로마력이 쇠퇴하고 교회력이 보편달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AD 원년은 예수님 탄생연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헤로데 대왕 사망연도가 로마력 750년(기원전 4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마태오복음 2장에는 헤로데 생존 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되자 754년을 탄생연도로 잡은 디오니시우스의 계산은 착오였음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시작한 AD는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탄생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4년 이전인 것은 분명하다. 이 해에 헤로데 대왕이 죽었기 때문이다. 루카복음에도 예수님 탄생에 대한 정보가 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첫 번째 호적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되었다(루카 2,1-2). 루카는 이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탄생했다고 기록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기원전 27년 황제가 되었다. 그는 매 14년마다 인구조사를 했는데 AD20년 실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AD 6년과 BC 8년에도 인구조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퀴리니우스는 AD 6년부터 시리아 총독으로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탄생은 기원후 6년이 된다. 루카복음 작가의 정보가 정확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작가는 탄생연도 보다는 ‘태어나신 장소’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한편 ‘기원전’을 의미하는 용어는 영어의 BC(Before christ)로 ‘그리스도 이전’이란 의미다. 이 용어는 17세기 영국 과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다가 정식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2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예수 그리스도 (3)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는 베들레헴이다.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의 증언이다. 구유의 탄생은 루카복음에 등장한다.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베들레헴으로 간 것은 인구조사 때문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가문이었기에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등록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붐볐다. 다윗가문에 속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 지점에 있다.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라헬의 무덤과 연관되어서다(창세 35,19).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이곳에서 예언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왕으로 임명되었다(1사무 16,1-13). 루카복음의 ‘여관’은 오늘날의 여관 개념이 아니다. 요셉과 마리아께서 ‘모텔’을 찾다가 빈 방이 없어 마구간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시 이스라엘은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옥에는 손님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일종의 손님방이었다. 그리고 가옥의 다른 공간에는 가축을 두었다. 가옥구조가 그러했다. 가축을 집 안에 둔 이유는 보호를 위한 측면도 있었고, 그들의 체온으로 집안이 따뜻해지는 난방 효과도 있었다. 마리아께서는 가축이 사는 공간에서 예수님을 낳으셨던 것이다. 손님방은 이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기에 여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물의 밥그릇인 구유에 예수님을 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았다. “그들은 별이 멈춘 집에 들어가 경배하였다.”(마태 2,9-11)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짜는 알 수 없다. 기록이 없는 탓이다. 박해가 끝나자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다. 그러자 탄생일 설정이 요구되었다. 교부들이 여러 날짜를 제시했지만 유권해석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주교가 제시한 5월 20일을 4세기 중반까지 지켰다.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탄생일로 지냈다. 기원후 354년 교황 리베리우스는 성탄일을 12월 25일로 선언했다. 이날은 로마달력으로 동짓날이며, 태양신 탄생일이었다. 교회는 로마인 축제일에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기리는 미사를 봉헌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유래다. 이후 주님 탄생일은 고정축일이 되었다. 동방교회는 5세기 중엽 받아들였고, 1월 6일은 주님 공현 축일로 지내고 있다. [2012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예수 그리스도 (4)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제시한다. 중심인물은 다윗 임금이다. 복음 작가는 예수님도 다윗 후손임을 알리기 위해 장황한 족보를 나열했던 것이다. 후대의 이방인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유다인에게는 친숙했고, 그 앞에선 껌뻑 죽어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태오복음은 아브라함까지 올라가지만 루카복음은 아담까지 닿아 있다.
예수님의 형제들을(마르 3,31) 성공회와 개신교는 친형제로 해석한다. 그러나 가톨릭과 동방교회는 사촌으로 받아들인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사셨고 요셉의 뒤를 이어 목수 일을 하셨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그는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가?”(마르 6,2-3) 목수는 희랍어 떽논(teknon)의 번역이다. 떽논은 꼭 나무일만 하는 목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구도 고치고 농기계도 수리하던 기술자를 뜻하는 단어였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 공적 활동을 시작하셨다(루카 3,23). 먼저 세례자 요한을 만나셨고(요한 1,29), 이후 광야로 들어가 단식과 명상을 통해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그 과정에서 사탄의 강렬한 유혹을 받으셨다. ‘고난의 그리스도’가 아닌 ‘영광의 그리스도’가 되라는 것이 유혹의 핵심이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거치면서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신앙교리를 선언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이다.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교회는 아리우스 이단과 네스토리우스 이단의 출현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아리우스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했고 네스토리우스는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마리아는 인간 예수님의 어머니는 되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이론을 펼쳤다. 에페소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 주장을 이단으로 선언했고 성모님께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공식화했다. 이 칭호가 희랍어 테오토코스(Theotokos)다. ‘토코스’는 어머니를 뜻하고 ‘테오’는 신(神)을 뜻한다. 유대교는 야훼 유일신 교리에 따라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예언자의 한 분으로 받아들인다. 이슬람교 역시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이라 부르며 위대한 예언자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도 인정하지 않는다. [2012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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