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요한 복음: 나를 증언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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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2-15 | 조회수3,895 | 추천수1 | |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여정을 걸어왔다. 첫 번째 글에서 우리는 요한 복음서가 쓰인 목적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어서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 것인데, ‘생명을 얻는 것’과 비슷한 표현들을 찾아보았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제 마지막 글을 준비하면서 “이 제자(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21,24)이라는 구절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아! 제자도의 핵심은 최종적으로 증언에서 드러나는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고, 성령과 제자들도 예수님을 증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여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하며 예수님처럼 증언의 삶을 산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증언 사실, “증인, 증거, 증언하다”는 단어들은 본디 재판과정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용어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도 자신의 정체성과 아버지에 대해 세상(유다 지도자들도 포함하여)과 논쟁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처럼 생명을 주고 심판하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신다. 세례자 요한, 아버지, 성경,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들이 이 주장을 증언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에 두 사람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기록(신명 19,15 참조)을 거론하시면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8,14).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8,18)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에 가능하다(10,30). 또한 증언은 부정적인 차원도 지닌다. 예수님은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4,44). 그리고 “세상을 두고 그 일이 악하다고 증언”(7,7)하시기도 했다. 이 증언을 통해 예수님은 수난을 예고하신 것이며 그분의 증언은 순교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반대에 직면하시어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으실 때 그 증언의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18,37).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증언 우리의 관심의 대상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은 목격자로서의 그의 증언을 이야기하며 그 증언이 참되다고 거듭 확인하는데(19,35; 21,24),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3,32-33 참조). 복음서에서 그의 첫 모습은 예수님을 닮은 그림처럼 소개된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 사랑받으며 그분의 품에 기대어있다.* 이러한 묘사는 그가 사랑을 받고 있는 위치에 있으며 예수님과 친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아버지 품에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1,18). 예수님이 아버지 품안에 계시므로 아버지를 알게 해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제자도 예수님의 품에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예수님에 대해 잘 알려줄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배신자가 누구인지 여쭈어볼 수 있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첫 번째로 믿는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 후 갈릴래아 해변에서의 고기잡이에서도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십자가 밑에서도 남성 제자들 중 유일하게 어머니와 함께 충실하게 예수님 곁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음으로써 예수님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증인이 되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고 그 제자는 성모님을 집에 모시면서 자기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신앙의 유산으로 모셨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복음서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고 전해준다. 이렇게 요한 복음 전체에서 이 제자는 믿음, 사랑, 그리고 충실함의 본보기가 된다. 그런데 복음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 제자를 두고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머물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셨을 때, 이것을 이 제자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 제자는 죽었고 요한 공동체는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혼란을 편집자의 설명을 통해 대답하는 것 같다. 곧 “머물다”라는 말을 그 제자가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남아있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21,23).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 공동체나 이 복음서에서 정신적으로 머물러 선포하고 증언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때 복음서의 최종 편집자는 복음서를 최종적으로 손질하면서 자기들의 지도자에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것이다.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복음에서 베드로는 순교자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참된 증거의 삶을 살았다. 베드로는 ‘피 흘리는 순교’를 했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땀 흘리는 순교’의 삶을 살았다. 공통점은 둘 다 예수님을 사랑한 까닭에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베드로는 순교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수제자로서의 리더십을 회복하며 제자들에게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 복음서라는 책을 기록한 이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이 제자는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그의 복음서는 우리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고, 계속 그러할 것이다. 보호자 성령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 복음의 원천과 권위에 책임을 진 사람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해 참된 증언을 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 성령이 하게 될 일과 이 제자가 한 일은 비슷하다. 보호자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고 ,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며,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 바로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님의 품안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었다. 이 제자가 보호자 성령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 가운데 일하고 계신 성령의 역사를 이해시켰다. 보호자 성령은 이 제자를 통해 일하신 것이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15,26).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15,27). 방 앞의 베란다 화분에 여주를 심었었다. 여름부터 가을 내내 그 줄기는 지붕까지 올라가며 꽃도 노랗게 피웠다. 내심 열매를 기대했다. 그러나 열매는 지금까지 맺히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조그마한 화분에 심어서 토양이 부족하고 거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토양과 거름이 부족하면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의 샘물을 마시지 못한다면 선교나 증언의 삶을 살지 못한다. 마치 열매 맺지 못하는 여주와 다름없다. 예수님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증언(또는 순교)으로써 증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복음서의 목적에 따른 구체적인 삶이요,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도 주님, 사랑의 샘인 당신의 가슴에 기대어 사랑의 물을 마시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받는 제자, 참된 친구가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과 함께 있었으므로 당신을 증언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당신과 함께 머물며 증언의 삶,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소서. * 그들은 로마식의 디귿자 형태의 식탁에서 왼쪽 팔꿈치에 의지해 비스듬히 눕고, 오른손으로 식사를 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예수님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는 예수님께 기대어 머리를 예수님의 가슴에 가까이 둘 수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렇게 가까이 있지 못했기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대신 물어보라고 했다. 유다도 아마 예수님 옆에 앉은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빵을 소스에 찍어 유다에게 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이혜자 인덕마리아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요한 복음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2월호, 글 이혜자 · 그림 조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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