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여호수아기 7장: 아칸의 범죄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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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1-18 | 조회수3,177 | 추천수1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27) “유다 지파 제라의 증손이고 잡디의 손자며 카르미의 아들인 아칸이 완전 봉헌물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를 터뜨리셨다.”(여호 7,1).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중에 활동한 에제키엘 예언자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개인의 운명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공유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가장이 잘못하면 그 식구들까지도 잘못의 결과를 같이 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의 반역 이야기다. 이 세 사람이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는 끔찍했다. 그 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일가족까지 모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벌을 받았다.
여호수아기 7장 아칸의 범죄 이야기도 고대의 공동체적 사상을 반영한다. 아칸은 예리코 성읍을 점령할 때 완전 봉헌물로 주님께 바쳐야 할 것을 빼돌렸다. 전리품 가운데서 좋은 겉옷과 은과 금덩어리를 빼돌려 천막 안에 숨겨두었다가 발각되었다. 그 결과 아칸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딸들, 그의 소유였던 소와 나귀와 양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여호 7,24 참조). 이처럼 에제키엘 이전에는 공동체적인 사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에제키엘 시대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바빌론 유배 때문이었다. 바빌론에 끌려와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왜 이런 큰 불행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런 국가적인 재난에서 개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개인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커다란 불행을 당하게 된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에제키엘서 18장 25절이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이처럼 바빌론 유배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조들의 잘못 때문에 자신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생각하고 하느님의 정의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이런 속담이 유행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에제 18,1). 따라서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을 올바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대신 받거나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받지 않고, 각자 행실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에제키엘은 인과응보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나중에 기원전 450년경 욥기가 인과응보의 원칙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겠지만, 에제키엘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과응보의 원칙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 행실에 따라 심판하신다. 각자 자신의 행실에 책임을 진다.’ 이것은 에제키엘이 강조한 원칙일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신약성경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다. 이런 성경의 사상을 기초로 교회는 죽은 다음의 심판, 영생과 영벌을 가르친다. 묵상주제 “아들은 아버지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고, 아버지는 아들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는다. 의인의 의로움은 그 자신에게만 돌아가고, 악인의 죄악도 그 자신에게만 돌아간다”(에제 18,20). [2013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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