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여호수아기 7장: 금덩어리를 탐낸 아칸의 범죄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미국 가톨릭 성경 각 권 약호입니다. |1|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1-27 | 조회수3,122 | 추천수2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29) “제가 전리품 가운데 무게가 쉰 세켈 나가는 금덩어리 하나를 보고는 그만 탐을 내어 그것들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고서는 제 천막 안 땅속에다 은을 밑에 깔고 숨겨 두었습니다”(여호 7,21). 이스라엘 백성은 예리코 성을 점령한 다음, 그 성읍 안에 있는 것을 모조리 죽이고 불에 태워 주님께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 여호수아가 완전 봉헌물에 손을 대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는데도, 아칸은 은덩어리와 금덩어리를 빼돌려 천막 안에 숨겨두었다. 그 최후는 참혹했다. 아칸과 그 일족은 이스라엘 백성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
아칸이 은덩어리와 금덩어리를 보고는 그만 탐을 내어 그것들을 차지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주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10장에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 그 젊은이는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떠나갔다. 이 젊은이의 태도에는 수많은 사람의 모순이 숨어있다. 이 젊은이는 너도나도 모두 완전한 삶을 원하지만, 세속적인 욕심을 포기하지 못해 주님을 기꺼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순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재물을 섬기고 떠받드는 삶을 산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이 아닌 재물과 권력을 섬기고 경배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주변의 소형교회를 고려하지 않고 교회버스 수십 대를 운용하고 대형 이벤트를 벌이면서 성장 제일주의로 나아가는 대형교회의 행태는 폭력이다. 경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신자유주의와 국제정치에서 가장 폭력적인 미국을 향해서는 옹호 내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교회는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인지 물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자본’, 곧 ‘돈’이 주인이 되는 사회다. 모든 것을 돈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돈을 중심으로 사는 사회다. 모두 돈에 미쳐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느덧 돈이라는 신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가? 어느 지역의 땅값이 올랐는지, 어느 아파트가 좋은지, 어느 회사의 주식이 상승세인지, 새로 나온 전자제품은 어떤 것인지, 요즘 유행하는 상품은 무엇인지 알아보려 혈안이 돼 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학원에 다니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어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더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이다. 오로지 돈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듯이 산다. 이제는 돈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했다. 물신(物神)은 이제 세상에서 하느님 행세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물신의 위력은 막강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교회라는 것인가? 2천년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이단적인 인물은 13세기의 성 프란치스코다. 성 프란치스코는 재물과 권력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 앞에 알몸으로 선 사람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구걸을 통해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청빈정신은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려면 돈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하느님이 하느님 되는 나라를 이룩해야 한다. 그리스도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묵상주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2013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