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실

제목 [인물] 성경 속의 인물: 바오로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신약] 묵시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 봉인을 열다(묵시 6,1-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3 조회수3,783 추천수2
[성경 속의 인물] 바오로 (1)


바오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아니지만 사도로 불린다. 현재 터키 영토인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Tarsus)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당시 지중해 동쪽 해안의 군사도시 겸 휴양지였다. 부친은 지역 유지로 로마 시민권을 소유했으며, 벤야민 지파에 속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사울이라 지었다.

사울은 이스라엘 첫 임금으로 벤야민 지파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울을 희랍어로 음역한 것이다. 당시 해외 유다인들은 이스라엘 이름과 그리스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 미국교포들이 영어 이름과 한국어 이름을 혼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울이 회개한 뒤 바울로 개명했다는 주장은 당시 문화를 모르고 하는 말로 잘못된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바오로 혹은 바울로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바울이라 표기하고 있다.

바오로는 바리사이파에 속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다(사도 22,3). 당시 가말리엘은 권위 있는 율사로 산헤드린 회원이었다. 사도들을 심문하는 최고 의회에서 유연한 입장을 취하며 청중을 설득했던 인물이다(사도 5.34). 바오로는 진취적인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음을 알 수 있다.

바오로의 출생연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이 가능한 성경구절이 둘 있다. 33년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바오로는 그 자리에 있었다.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사도 7,58) 그리고 감옥에서 필레몬에게 보낸 55년경의 편지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데다가 이제는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필레 1,9)

하지만 젊은이와 늙은이의 기준은 애매하다. 학자들은 당시 쉰 살이면 노인으로 불렸기에 바오로는 33년에는 20대 중반이었고 55년에는 50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보면 바오로의 출생연도를 기원후 5~10년이 된다. 예수님보다 10살가량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바오로의 회심사건은 34년경에 있었다. 당시 그는 열광적인 유다교인으로 기독교를 이단시 하고 있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없애버리려 하였습니다.”(갈라 1,13)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교인들을 찾아가던 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기적의 만남이었다(사도 22,6-21). 이후 교회로 들어왔지만 바오로의 위치는 불안정했다. 바리사이들은 변절자라 비난했고 교인들은 여전히 어색해했다. 이때 바르나바가 도움을 준다. 그는 바오로를 신뢰하며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뿌리내리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2013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바오로 (2)


사도라는 단어는 희랍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를 음역한 것이다. 아포(apo)는 접두사며 스톨(stol)은 파견하다는 동사에서 왔다. 따라서 사도는 임무수행을 위해 앞서 파견된 사람이란 뜻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이 호칭을 부여했다.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펼치려 그들을 먼저 보낸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도는 역사적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만이 될 수 있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사건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초대교회는 바오로가 과연 사도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르나바의 중재로 이 문제는 매듭을 짓는다. 바오로의 진정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초대교회 내에서는 유다교에서 넘어온 이들의 발언권이 강했다. 그들은 유다교와 기독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한 분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율법과 할례 같은 기존 전통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방인이었다가 교인이 된 이들은 유다교와 기독교는 다르다며 단절을 주장했다.

바오로는 이방인의 입장을 취하면서 유다인 기독교인들을 비판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50년경 예루살렘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논의를 위해 사도회의가 열렸다. 세 사항이 결정되었다. 첫째, 이방 출신 교인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 둘째, 예루살렘 거주 유다인은 사도들이 전도하고 나머지 지역은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담당한다(갈라 2,9). 셋째, 예루살렘 돕기 모금운동 한다.

신약성경에는 서두에 바오로의 이름이 언급된 서간이 13개 있다. 이 중 7권은 바오로가 직접 쓴 것으로 판명되었다. 테살로니카 전서, 갈라티아서, 코린토 전후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로마서다. 나머지 6권은 바오로의 이름을 빌려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밝혀졌다. 테살로니카 후서, 콜로새서, 에페소서, 티모테오 전후서, 티토서다.

바오로는 64년경부터 시작된 로마의 박해로 체포되어 67년 순교했다. 축일은 베드로와 같은 6월 29일이다. 무덤 위에는 현재 성 바오로 대성전이 세워져 있다. 귀족적인 용모에 머리숱이 적고 길고 검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1세기 이후 등장한 성화에서 발견된 모습이다. [2013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