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인물: 바르나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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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2-24 | 조회수2,924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인물] 바르나바 바르나바는 레위지파로(사도 4,36) 키프로스 섬에서 태어났다. 바오로와 함께 사도라고 불린 분이다. 원래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만 유보된 호칭이었다. 그런데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직제자가 아닌데도 이 명칭을 받았다. 그만큼 초대교회의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르나바의 말뜻은 ‘위로의 아들’이란 의미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공동체에 합류한 뒤 사도들에게서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자신 소유의 밭을 팔아 교회에 헌납했고(사도 4,37)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바르나바는 회심한 바오로가 초대교회 공동체에 합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오로는 박해자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그러기에 교회로 들어왔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앙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나바는 바오로의 후견인이 되었고 사도들에게 그의 회심을 적극적으로 알렸다(사도 9,27). 그만큼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사도들은 바르나바를 바오로와 함께 안티오키아 교회로 파견한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제국 세 번째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스테파노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우들도 안티오키아로 피신해 교회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를 능가하는 공동체로 발전시켰다. 안티오키아 교인들은 이때부터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다. 안티오키아 교회를 베이스캠프로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지역으로 떠난 것이다. 우선은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대상이었다. 1차 여행의 책임자는 바르나바였고, 첫 도착지는 그의 고향 키프로스 섬이었다. 하지만 2차 여행부터는 바오로와 갈라져 홀로 활동하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말년의 바르나바는 키프로스 섬으로 가서 선교를 계속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61년경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키프로스 섬의 수호성인이며 5세기말 그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 발견되었다. 초대교회 문헌인 바르나바의 편지는 당시 교회생활을 알려주는 귀한 자료인데 그의 작품은 아니다.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이름을 빌릴 만큼 바르나바는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2013년 2월 24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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