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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성경 속의 인물: 안티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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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9 조회수4,359 추천수1
[성경 속의 인물] 안티오키아


안티오키아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심복이었던 셀레우코스 장군이 세운 도시다. 그의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라 안티오키아라 불렀다. 희랍어로는 안티오케이아(Antiokeia)며, 라틴어로 안티오키아(Antiochia)다.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가 되었고 비잔틴 제국과 십자군 시대에도 중요한 그리스도교 도시로 남아 있었다.

현재는 터키에 속하며 안타키야(Antakya)라 불린다. 지진과 전쟁으로 옛 유적은 많이 소실되었지만, 여전히 발굴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시리아에 속한 적도 있기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더 많이 알려졌다. 터키 남부의 오론테스 강변에 있으며 바다에서 강을 따라 22k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있다. 기원전 64년 로마에 편입되었고 시리아 속주의 주도로 번성했다.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 3대 도시였다.

오론테스 강으로 지중해와 닿아 있기에 통상무역이 활발했다.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로 이어지는 대상로의 중심지였다. 경제적 풍요는 인구 유입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들었다. 유대인들도 큰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에는 안티오키아 출신의 니콜라오스가 일곱 부제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장면이 있다(사도 6,5). 초대교회는 안티오키아 교회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많은 교인들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인을 상대로 선교했지만, 곧이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웠다.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선교한 공동체였던 것이다.

이후 이곳으로 파견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함께 봉사했고, 선교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그때까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지던 초대교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세력으로 확장된 것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큰 기근이 있었는데 안티오키아 교회는 예루살렘에 구호금을 보낼 만큼 성장했다(사도 11,30).

이후 안티오키아 교회는 로마의 박해를 견디어냈다. 그러나 7세기부터 이슬람의 통치를 받으면서 기독교는 잊히기 시작한다. 11세기 말 십자군의 등장으로 잠시 살아나지만 13세기부터 무슬림의 지배로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안티오키아를 차지한 후 근세까지 지배를 받았고 이 연고로 터키의 도시가 되었다.

[2013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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