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판관은 누군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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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3-18 | 조회수3,377 | 추천수1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36) 판관은 누군가? (1) 판관기는 여호수아의 죽음부터 사무엘이 등장하기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주님께서 일으키신 사람들을 ‘판관’이라 부른다. 우리말 성경은 판관(判官)으로 번역한 반면, 개신교 성서는 사사(師士)라고 번역한다. ‘판관’이라는 용어는 백성을 다스리는 법적인 역할에 중점을 둔 번역이고, ‘사사’는 백성을 이끄는 군사적 역할에 중점을 둔 번역인데, 히브리어의 ‘판관’(sopet 쇼페트)이라는 단수명사는 이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뜻한다. 판관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 분연히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민족의 침략에서 건져낸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관이 ‘하느님의 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특별한 카리스마를 받아 백성의 구원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민족의 압제에서 건져내고 백성을 다스렸다. 하느님의 영을 받았다는 점에서 판관은 예언자와 공통점이 있다. 판관은 하느님의 영을 받아 백성을 건져냈고, 예언자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히브리어에서 ‘판관한다’(shafat 샤파트)는 동사는 ‘위태로운 상황을 회복시키다’는 뜻이 있다. 정의를 실행하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다, 해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판관들은 국가적인 불충실과 연관되어 이방민족들의 압제를 받아 상황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한 지파 또는 여러 지파의 상황을 회복시킨 강력한 사람이다”(H. Cazelles). 이처럼 ‘판관한다’는 백성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위험에서 건져내는 우두머리의 일을 뜻하지만, ‘판관한다’는 티로나 카르타고를 통치한 판관들처럼 ‘다스리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판관기는 이스라엘의 판관들을 나중에는 ‘이스라엘 전체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우두머리’로 묘사한다(판관 4,4; 10,2-3; 11,27; 12,7-14; 15,20; 16,31). 이런 개념은 판관을 어떤 가문이나 지파를 곤경에서 건져내려고 일어선 사람으로 제시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판관은 누군가? ‘판관들’(soptim 쇼프팀)이라는 복수명사 형태는 판관기 2장 16-18절에서만 사용된다. 여기서 ‘판관들’이라는 단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신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판관들’이라는 복수명사의 사용빈도는 매우 적다. 판관기 2장을 제외하고는 사무엘기 하권 7장 11절, 열왕기 하권 23장 22절, 룻기 1장 1절에서만 나타난다. 한편 판관기는 우리가 아는 판관 가운데 어느 특정인물을 두고 ‘판관’(sopet 쇼페트)이라는 단수명사를 쓰지 않는다. 다만 2장 18-19절에서 어느 불특정 다수 가운데 한 사람을 지칭할 때 ‘판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이다. 반면에 영웅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 ‘판관하다, 다스리다’는 동사가 자주 등장한다(3,10; 4,4; 10,1-5; 12,7-15; 15,20; 16,31). 이 동사는 주로 이야기의 외적인 틀을 이루는 부분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편집자의 손길이 닿은 증거다. 이 동사는 단순히 ‘재판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명령하다,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히브리어가 속한 셈족 언어권에서 ‘판관’이라는 단어는 권위가 있는 공적인 직책을 뜻했다. 예를 들면, 기원전 18세기 마리 문헌과 기원전 13세기 우가리트 문헌에 보면 판관은 공적인 권한을 행사한 고위관리였다. 그러나 그들의 권한은 정해진 도시나 지역을 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고대사회에서 판관제도는 부족체제와 왕정체제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정치적 제도였다. 묵상주제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판관들을 세우실 때마다 그 판관과 함께 계시어,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주도록 하셨다”(판관 2,18). [2013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37) 판관은 누군가? (2)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고대사회에 존재했던 이런 판관제도에 관한 정보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관의 권한을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시켰고, 이스라엘 판관들의 연대를 설정하여 순차적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판관기에 나오는 모든 판관이 이런 직책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판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행위를 언급하는 동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원하다’라는 동사다(판관 3,31; 6,15; 10,1). 이런 관점에서 오트니엘과 에훗을 ‘구원자’라고 불렀다(판관 3,9.15).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판관기 1장의 가나안 점령 이야기는 여호수아기의 정복 이야기와 사뭇 다르다. 판관기에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총지휘하여 일사불란하게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면모를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 곧 이스라엘 각 지파의 각개약진이 펼쳐진다. 각 지파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살길을 개척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해나갔다. 판관기 1장은 유다와 시메온 지파, 칼렙과 오트니엘 가문 그리고 카인족의 활동을 말한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산악지대에 국한되었으며, 해안 평야지대와 므기또 평원, 요르단 계곡 등은 이미 이방민족들이 오래 전부터 차지하고 있어서 점령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판관시대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뭉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생활은 각 지파별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증거가 ‘판관기 1장’이다. 각 지파가 이렇게 독립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형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요르단 계곡은 동서교류를 차단했고, 중앙 산악지대는 각 골짜기의 마을들을 고립시켜 각 지파의 관습과 전통과 방언을 고수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지형적 여건 때문에 판관시대에 이방민족의 침입은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파에 국한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위협을 당한 지파가 도움을 청하더라도 지역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들만이 나설 수 있었지, 열두 지파 전체가 한꺼번에 달려올 수 없었다. 그러므로 판관기에 묘사된 판관들은 각 지파의 영웅으로 보아야 한다. 판관은 일차적으로 외부의 공격을 받은 해당 지파 출신으로서 ‘그 지파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진 판관기는 신명기계 편집자의 틀에 맞춰 이념적인 작업이 가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방민족의 침입이 어느 한 지파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가해진 것이며, ‘하느님의 카리스마를 받은 판관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구원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된 것이다. 그리고 그 판관의 시대가 끝난 다음 또 다른 판관이 나타나 구원활동을 펴는 일이 차례대로 일어났다고 연대기적으로 편집되었다. 요약해서 보면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은 법적인 의미의 판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영웅’들이고, 이방민족의 침입이나 압제기간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자기 지파 또는 인근 몇몇 지파들을 이끌고 전투를 행했다. 이들의 임무는 한시적인 것이었고, 아들에게 세습되지도 않았다. 어느 경우든 이들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다만 드보라의 경우에는 다스리고 구원하는 활동 가운데 법적인 직무도 있었다는 암시를 볼 수 있다(판관 4,4-5 참조). 드보라는 법적인 재판도 한 유일한 판관이었다. 묵상주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판관 3,9).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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