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들의 서간: 코린토 1,2서 (1)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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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03 | 조회수3,126 | 추천수1 | |
[사도들의 서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 코린토 1,2서 (1)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풍족해야, 또는 다른 사람들 위에 있어야 행복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쌓는 일이나,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에 집착합니다. 개중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더 힘 있는 사람 뒤로 줄을 서고, 힘없는 사람을 짓누르며, 거짓과 위선, 사기까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는 이치이며, 이 이치를 따르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이라 가르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 하는 우리 가운데도 이런 세상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마저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전하는 ‘십자가 신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코린토와 바오로 바오로 사도는 두 번째 전도여행 가운데 코린토에 들릅니다. 이곳 코린토는 로마 원로원이 관할하던 그리스 아카이아 지방의 총독이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레카이온과 켕크레애라는 항구를 끼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리스인, 로마인, 유다인 등 많은 인종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중해 지역에 산재해 있던 온갖 문화와 종교들이 섞여있었습니다. 또한 무역과 상업이 번창했기 때문에 빈부격차도 극심했습니다. 바오로는 이곳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수 천막을 만들어 생계비와 활동비를 벌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는데요. 18개월간 머물며 큰 교회를 세웁니다(사도 18,1-17). 바오로가 세운 교회에는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많았습니다(사도 18,4-8). 당시 바오로에게 세례를 받았던 이들은 유력한 이들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는 가난한 이들이었는데요.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교회 안에 가난하고 천대받던 이들이 참 많았다고 전합니다(1코린 1,26-28). 교만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나 에페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달변가요 성경에 정통했던 아폴로를 만납니다. 아폴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전했었는데요. 아직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를 잘 교육시킵니다. 교육을 받은 뒤 아폴로는 아카이아, 곧 코린토 쪽으로 건너가려 하는데요. 바오로와 형제들은 직접 편지까지 써주며 그곳 형제들에게 아폴로를 잘 영접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폴로는 코린토에 도착해서 하느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사도 18,24-28). 그런데 여기서부터 코린토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폴로를 추종하는 이들과 바오로를 따르는 이들이 서로 분열되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1코린 1,11-12). 이러한 분열은 단순히 어느 파인가 하는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또 자신이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내세우는 다툼으로까지 번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서 힘을 지니려는 싸움의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1코린 12장). 사실 바오로 시대에는 학교에서 수사학을 배웠는데요. 이 수사학에서는 타인을 설득하거나, 논박하기 위해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설득하려는 사람 자체가 아무런 힘이나 지식이 없으면(ethos), 그의 말 역시도 그다지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에 익숙했던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교회 내에서의 힘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교회 분열 소식을 전해들은 뒤 편지를 써서 코린토인들을 훈계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파벌을 조장하고, 자신을 높은 사람인 것처럼 여긴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1코린 1,17). 십자가 신학 바오로는 매번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세상에 오셔서 행하셨던 마지막은 바로 십자가상의 죽음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버리는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자신을 낮추신 이유는, 낮은 모습의 예수님을 통해 큰일을 행하시는 하느님이 더욱 영광스러워지기 위함이었습니다(1코린 1,18-2,16; 필리 2,6-11).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고, 기적을 행하며 자신의 영광으로 세상을 뒤엎어버렸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영광은 매우 커졌을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가려져 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은 더욱 크게 드러났습니다. 사실 이렇게 자신을 버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동이었을 겁니다(1코린 1,18). 자신을 띄우는 방법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힘과 권세, 재물을 모두 누리는 이만이 참으로 행복한 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게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가려져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약한 이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해나가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1코린 1,26-31). 그토록 약한 이를 통해서도 위대한 업적을 행하실 수 있는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찬양합니다. 사실 바오로 역시 코린토에서 전교할 때 정말 나약한 이였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코린토에 도착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1코린 2,3). 게다가 코린토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직접 대하면 그는 몸이 약하고 말도 보잘것없다.”(2코린 10,10)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오직 하느님 사업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오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마저도 모조리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바오로는 자신이 가진 약함만을 자랑하며, 하느님 영광만을 위해 살았습니다(2코린 11,21-33). 자신을 낮추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이야기하고자 했고, 또 살아내었던 십자가 신학입니다. * 염철호 사도 요한 - 부산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년)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 염철호 사도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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