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들의 서간: 갈라티아서 -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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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03 | 조회수2,546 | 추천수1 | |
[사도들의 서간]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 갈라티아서 율법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아닌 이상 율법 규정 가운데 어느 것 하나는 어기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3,10-11 참조).
이런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런 바오로의 생각을 잘 드러내 주는 갈라티아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로마 그리스 감사양식 로마 그리스 편지 양식에는 감사양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인사 다음에 나오며,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단락인데(로마 1,8-17; 1코린 1,4-9; 2코린 1,3-11; 필리 1,3-11 등), 수신자들이 편지에서 다루는 내용을 잘 받아들이도록 환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수사학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지 저자는 감사 단락에서 대개 본문에서 다루어질 주제들을 미리 알려주곤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갈라티아서에는 이 감사양식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감사양식이 나와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갈라티아인들을 이렇게 다그칩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6). 그것도 모자라, 편지 중간에는 바오로가 좀처럼 쓰지 않는 비난을 담아놓기도 합니다(3,1 참조). 이런 바오로의 모습은 그의 다른 편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그러면 바오로는 왜 이렇게 갈라티아인들을 다그칠까요? 갈라티아와 바오로 갈라티아란 고대 프랑스 지방인 ‘골 지방’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기원전 3세기 초 골 지방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현재 터키 중북부 지방으로 이주해 왔는데, 이 지역을 갈라티아라고 부릅니다. 이 지방은 기원전 25년 앙카라를 수도로 하는 로마 속주가 되었는데, 앙카라는 현재 터키의 수도입니다. 갈라티아서의 증언에 따르면 바오로는 “육신의 병이 계기가 되어”(4,13) 갈라티아인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이때 바오로는 여러 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그 이름은 정확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바오로는 그 교회들을 ‘갈라티아의 교회들’(1,2)이라고만 부릅니다. 어쨌든 갈라티아 사람들은 몸이 아픈 바오로를 극진히 대접했고, 바오로는 이 점을 매우 고마워합니다(4,12-15).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세 번에 걸친 전도여행 가운데 항상 갈라티아를 거쳐가면서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주는데(사도 13,14-14,25; 16,6; 18,23), 그만큼 갈라티아 교회들을 아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믿음과 의로움 처음 바오로가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바오로는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모세 율법 이전 사람이니,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이 주신 율법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오로가 보기에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감시하는 감시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고, 또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으니, 굳이 율법의 감시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3,15-29). 곧, 율법의 굴레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5,1-12).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오로가 함부로 살아도 믿음만 있으면 의로워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는 우리 모두 율법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 이상(4,1-7),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리스도의 법(5,13-6,10)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4,7)라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 그런데 초대교회 때 바오로와 다른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야고보 사도의 경우는 실천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사도 15장이 전하는 첫 번째 사도회의 마무리 장면에서도 이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 의무를 부가하지 않는 대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불륜,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는 정도의 규칙은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당시 실천을 강조하던 야고보 쪽 사람들은 바오로 쪽 사람들과 약간의 긴장 관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은 갈라 2,11-14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베드로와 바르나바,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많은 유다인이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자, 즉시 이방인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때 바오로는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관하여 지적합니다(2,11-14). 아마도 이런 야고보와 관련된 이들 가운데 몇몇이 갈라티아 지방까지 올라와 교우들에게 할례와 율법의 중요성을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5,12). 물론 야고보가 직접 파견한 사람들은 아닌 듯하지만, 실천을 강조하던 야고보와 비슷한 노선을 가진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그들은 갈라티아인들에게 바오로가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가르침이 참된 것이라고 주장했나 봅니다(1,6-10). 그래서 갈라티아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바오로가 편지를 써서 그들을 질타합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는 자신 역시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이며(1,11-24), 자신이 가르치는 바는 모두 예루살렘의 주요 인사들과 협의한 내용들이고(2,1-10), 우리의 구원은 율법과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2,15-21). 믿음이 없다면 사실 우리 교회는 단순히 희생과 봉사만을 추구하는 봉사단체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단식과 절제만을 추구하는 극기주의자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 교회는 세상 속 다른 단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고, 믿음이 빠진다면 교회의 모임은 일반적인 계모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바오로는 다시금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뿐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희생과 봉사, 기도와 자선, 단식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염철호 사도 요한 - 부산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년)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4월호, 염철호 사도 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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