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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풀이: 신명기의 발견과 여 예언자 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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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4 조회수2,732 추천수1
[성경풀이 FREE] 신명기의 발견과 여 예언자 훌다


열왕기 하권 22장에서 우리는 남 유다의 위대한 왕 요시야를 만난다. 히즈키야 왕의 증손자로서 기원전 7세기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이끌었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산당을 없앤 다음 모든 경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보수를 위해 사람들이 헌금을 모았고, 그 금액으로 일꾼들의 삯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사제 힐키야가 성전에서 어떤 두루마리를 발견했고 서기관 사판에게 보여주었지만, 사판은 그 율법 두루마리의 중요성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22,3-13). 사판으로부터 두루마리 내용을 전해 들은 요시야 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기 위해 예언자에게 가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기로 했고, 당시 유명한 예언자로는 예레미야, 즈파니야, 나훔 등이 있었다. 그러나 14절을 보면 이들을 제치고 여 예언자 훌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인에게 문의한 것도 의문이지만, 훌다가 그 두루마리를 읽고 권위성을 인정했을 때 요시야 왕이 두루마리의 율법대로 종교 개혁을 실행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 두루마리가 어떻게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그 두루마리가 모세 오경 중 신명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왜 요시야의 신하들은 예레미야가 아니라 훌다를 찾아갔을까? 여러 추측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윌리암 E. 핍스라는 학자는 훌다가 글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예레미야는 바룩이라는 서기관이 예언 필사를 대신 해주고 있었고, 고대에는 왕들도 글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인문학을 중시한 우리나라에서는 관리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겠지만, 고대 근동에는 종이가 귀했고 글을 아는 사람도 적었다.

그래서 대신 문서를 읽어주고 글을 써 주는 전문직 서기, 필사관(scribe)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훌다의 영향력이 그대로 이어져 예루살렘 성전 게이트 중 하나는 “훌다 문”이라 불렸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던가! 훌다는 예루살렘 성전에 이름을 남겼으니 그 이름을 제대로 남긴 셈이다.

[2012년 7월 22일 연중 제16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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