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성경풀이: 스켐과 야곱의 우물(요한 4,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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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14 | 조회수3,054 | 추천수1 | |
[성경풀이 FREE] 스켐과 “야곱의 우물”(요한 4,4-9) - 에발산과 스켐.
사마리아 지방 스켐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다. 북쪽으로 에발 산(사진), 남쪽으로 그리심 산을 병풍처럼 둔 스켐은 히브리어로 “어깨”라는 뜻이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첫 수도였던 스켐은 그때만 해도 구약의 중심지였다. 그러다가 “천하다”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기원전 8세기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아시리아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문화 말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과 피를 섞어 히브리 혈통을 없애기 시작하면서, 사마리아에 대한 유다 인들의 천시가 시작되었다. 이 경시 사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요한 4,9인데, 예수님 시대에도 유다 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꺼리는 사마리아에 들어가시어 “야곱의 우물”에서 여인에게 물을 청하셨다(요한 4,6-9참조). 그리고 4절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셔야 했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특별히 그곳에서 하실 일이 있었음을 뜻하는 듯하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버림받은 이들을 보듬고자 하심이 아니었을까? 2800년 동안 지속된 역사의 오랜 오명 때문에 지금도 고립되어 사는 사마리아를 지나칠 때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도 “만민은 평등하다” 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장애인들이나 고아, 사회적인 약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들을 두 번 아프게 만들며 우리 사이에서 또 다른 사마리아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본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거리에는 장애인들이 다니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헤아려줄 선한 이웃들이 부족해서가 아닐지. 거룩한 빛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번 성탄에도 소외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큰마음을 청하고 싶다. [2012년 12월 2일 대림 제1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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