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풀이: 네비 사무엘(예언자 사무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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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5-14 | 조회수3,266 | 추천수1 | |
[성경풀이 FREE] 네비 사무엘(예언자 사무엘) - 예언자 사무엘.
사무엘의 고향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라마이다. 아무리 초보 신자라 해도 사무엘의 이름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탈출기의 모세와 판관기 4장의 드보라 이후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예언자이자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이었고, 미래를 읽는 선견자이기도 했다(1사무 9, 9). 그리고 그는 사제로서 주님께 번제를 바칠 수 있었다(1사무 7,9-10). 이와 같은 사무엘의 명성은 당시 “브에르 세바에서 단”까지 퍼져(1사무 3,20), 자칫 흐트러지기 쉬웠던 지파 체제의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고 판관기 이후의 왕정 확립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스라엘이 판관 체제에서 왕정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안정적인 임금을 중심으로 구심점을 확보하여 주위 국가들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는 인간의 왕을 세움으로써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져 처음에는 반대했었다(1사무 8,7). 게다가 그에게는 브에르 세바에서 판관 활동을 하던 “요엘”과 “아비야”라는 아들이 있었다(1사무 8,1-2). 그러나 “아버지만한 아들이 없다”는 속담처럼 부정 부패에 빠진 아들들이 지탄을 받아 판관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된다. 필요에 따라 주님의 영을 받은 카리스마적 판관을 세우는 임시 체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핏줄을 통해 계승자가 정해진 안정적인 왕정을 채택하느냐는 그 당시에도 결정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왕을 중심으로 합심하는 왕정이 불가피했겠지만, 그에 따른 폐해와 부작용들은 나중에 사무엘이 경고한 대로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계기도 되었기 때문이다(1사무 8,11-18).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결국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지만(1사무 10,1), 사울이 죄를 지어 하느님 눈 밖에 난 다음에는 그의 불운에 대해 오랫동안 슬퍼하였고,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찾아가 거룩한 기름을 부었다(1사무 16,1-13). 그 이후 사무엘은 실질적인 판관 지위에서 물러나 고향 라마에서 여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1사무 25,1). 비록 사무엘기에는 선구자로서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의 인간적인 생각이나 번민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 암시되는 사무엘의 위대함은 그가 이룬 업적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접고 다음 세대에 양보할 줄 알았던 미덕,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다가도 후대를 위해 내려올 줄 알았던 현명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굳이 내 피붙이가 선택되지 않더라도 민족을 위해 크게 볼 줄 알았던 겸허한 안목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두드러지는 시대의 영웅 사무엘. 모든 정치 특권을 새파란 젊은이에게 양보하고도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겸손함은 판관 체제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이스라엘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탄탄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2013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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