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17: 구약성경의 이모저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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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6-01 | 조회수3,427 | 추천수1 |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7) 구약성경의 이모저모 구약과 신약, 대립 아닌 서로 밝혀주는 열쇠 유다인들은 지금도 3000년 전, 4000년 전 언어로 성경을 외운다.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 이야기를 외우는 것이다. 이는 유다인 힘의 원천이다. 몸과 머리로 외운 것은 오래 간다. 그런 면에서 성경 필사는 참 좋은 방법이다. 몸으로 성경을 경험한다는 면에서 좋다. 성경 본문을 베끼며 가장 완벽한 책을 한자 한자 경험하는 것이다. 또 성경 필사를 하면 성경이 한 부 늘어난다. 그저 '성경 필사'라고만 하지 말고, 정성 들여 사본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하면 어떨까?
마르키온주의 고대 이단주의자로 여겨지는 마르키온은 기원후 85년경 소아시아의 시노페(Sinope)에서 태어나 160년경에 죽은 구약성경 학자다. 그는 일찍이 '유다인의 성경'(구약성경) 연구로 이름을 얻어 그에게 구약성경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 등 총 73권으로 된 성경을 읽는다. 그런데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렇게 성경 목록이 확정돼 있지 않아 현재 외경으로 분류된 책들도 성경으로 읽는 신자들이 있었다. 이에 마르키온은 '정경(正經)의 목록'을 만들었다. 확실한 기준으로 성경과 성경이 아닌 책의 목록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마르키온은 이단이었지만 '정경'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정경이 되려면 경전의 '자기 완전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책 본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책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그는 '유다인의 성경'인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수'라는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구약의 '야훼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 곧 '예수님의 하느님'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두 신이 다른 신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는 구약의 하느님은 전쟁의 신, 율법의 신, 유다인의 신이요, 예수님의 하느님은 평화의 신, 말씀의 신, 만인의 보편적인 신이라고 여기며 신약과 구약을 대립시켜 보았다. 이 부분이야말로 명백한 오류요,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신약과 구약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이 하나이자 서로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관계다. 마르키온은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문제가 유다인의 성경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구약성경을 뺀 무척 얄팍한 성경 목록을 만들었다. 이를 '마르키온 성경'이라 한다. 그의 두 번째 오류는 그가 자의적으로 성경 가운데 일부를 빼 자신만의 성경 목록을 만든 것이다. 거룩한 교회 전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경 목록을 편집하는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결국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갈라질 당시 144개나 되는 공동체가 그의 분파에 참여할 정도로 그들은 대규모 이단이었다. 이처럼 교회에서 분열돼 새 종교를 세운 것도 그의 큰 오류다. 이후 가톨릭 교회 신학자들은 성경을 이해할 때 '마르키온주의(Marcionism)'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키온주의란 신약과 구약을 이렇게 대립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다. 마르키온주의에서 벗어나자 마르키온주의는 현대에도 은연중에 퍼져 있다. 독일의 저명한 구약학자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신부는 오늘날의 '잠재적 마르키온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현대인도 자칫 잘못하면 마르키온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쳉어 신부는 현대에서 세 가지 형태로 잠재적 마르키온주의가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는 '대체 모델'이다. 신약이 구약을 대체한다고 여겨, 심한 경우 신약만 읽으면 되고 구약은 나중에 읽어도 된다거나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화 모델'이다. 구약성경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곧 신약성경만이 절대적이고 구약성경은 상대적인 것, 덜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며 신약성경을 준비하는 책이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약속을 실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집트 해방 사건이 덜 중요해졌는가? 예수님이 오셨더라도 하느님께서 구약시대 우리 인간에게 해주신 일은 절대 상대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셋째는 '선별 모델'이다. 구약성경의 일부 내용만 신약성경으로 흡수됐기 때문에 선별해서 보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약속은 얼핏 보면 비체계적이고 난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반영되지 않은 구약성경의 내용은 없다. 구약성경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구세사는 마치 씨앗이 발아해 자라나듯 신약의 예수님으로 열매를 맺는다. 우리 눈에 비체계적이고 난해하게 보이는 내용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임을 믿어야 한다. 어떠한 구절이라도 깊이 성찰하고 깨닫는 자에게는 참 구원의 빛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일, 정리=이정훈 기자]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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