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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 마르타(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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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2 조회수2,814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마르타(지도자)

완전한 믿음으로 무장, 용감히 행동하는 여성


신약 성경이 언급하는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마르타는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부유한 집주인이었고, 여동생 마리아와 오빠 라자로와 함께 베타니아에서 살았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 곧 올리브의 동쪽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선한 주부, 손님을 후대하는 주인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집에 자주 방문하셨고, 손님에게 온갖 호의와 융숭한 대접을 베푸는 그녀의 태도를 크게 칭찬하셨다.

여성인 마르타가 집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라자로가 마르타보다 더 어릴 경우에, 그리고 그 집에 다른 남자가 없었을 경우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마르타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충분히 이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은 한결같이 마르타를, 활달한 성격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일에 뛰어난 여인으로 소개할 뿐, 수줍어하거나 어떤 일을 행하기를 주저하는 소극적인 여인으로는 아예 증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루가 복음이 전하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마르타는 부엌일과 식탁일에 무척 분주했지만, 여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가 10,38-42 참조)

마르타가 예수님께 “동생더러 저를 거들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41-42절) 이 경고의 말씀은 마르타의 마음에 분명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마르타뿐만이 아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경고는 마르타와 비슷한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앞으로도 계속 상처를 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다소 무례하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당하지 않는가? 마르타는 주님을 잘 모시기 위해 부엌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이에 대한 보답이 고작 그런 경고의 말씀이라니, 해도 너무 하지 않는가? 귀한 손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려는 주인으로서는 식탁에 좋은 것을 내놓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마르타를 가정주부와 요리사의 주보성인으로 여겼다. 그녀는 예술의 세계 안에서도 종종 어머니와 가정주부의 성인으로 묘사되었고, 실제로 이런 흔적을 취사도구와 열쇠고리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마르타의 활달한 성격과 적극적인 행동은 상당히 실용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안에서 그 가치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마르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남겼다. “마르타, 그대의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하며,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솔직히 마리아의 행동 외에 다른 행동을 원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경청하는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예수님께서 마르타의 수고와 노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셨거나 외면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증언들은 예수님께서 자주 잔치에 참여하시어 기쁜 마음으로 함께 음식을 드시고 포도주를 나누셨다고 전해준다. 그런 잔치들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예수님의 경고 말씀은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듯이 보인다. ‘마르타! 그대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곧 무엇을 실제로 필요로 하는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하는 때와 행동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휴식하는 때와 경청하는 때도 있는 법입니다. 스승인 내가 그대들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면, 지금은 모름지기 경청하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순간마다 무엇이 요구되는 지를 숙고하는 것은, 그가 남자든 여자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과제이다. 그러므로 마르타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경고를 항상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르타의 ‘다른’ 모습

마르타의 이런 역할에도 불구하고, 마르타의 인물됨은 요한 복음의 증언을 고려하지 않으면 매우 편협하게 고착되고 왜곡될 수 있다. 요한 복음은 라자로의 소생 사건과 관련지어 마르타의‘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요한 11,1-44 참조)

물론 여기에서도 마르타는 매우 적극적이고 활달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마중을 나갔고, 며칠을 주저하다가 마침내 찾아오시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마르타는 - 이 점은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 - 이 라자로의 소생 사건에서 믿음이 매우 강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곧 예수님께 매우 가까이 다가선 인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5절) 예수님께서는 이 세 명의 형제 자매들과 모두 가깝게 지내셨지만, 마르타가 그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던 것처럼, 이제 마르타와 함께 삶과 죽음과 부활 등의 핵심 사안에 대해 신앙의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신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는 당시에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유다인 랍비에게는 여인과 공공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금지된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타는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서 더디 오셨기 때문에 자기 오빠 라자로가 죽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마지막 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밝힌다. 곧 죽은 오빠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마르타는 부활을 흔들림 없이 믿는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제 하느님의 성령을 통해 자기 오빠에게 도움을 베푸실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수님께서는 - 요한 복음의 묘사에 따르면 - 이처럼 믿음이 깊고 확고한 의식을 지닌 여인을,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인물로 여기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26절)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심으로써 마르타의 신앙상태를 살피신다. 마르타는 오롯한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 이것은 실로 완전한 신앙고백이다. 그것도 예수님에 관해 신앙이 고백될 수 있는 모든 내용이 요약된 고백이다.

예수님께 대한 이런 완전한 신앙고백은 복음서 가운데에서 오직 한 대목에서만 더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마태 16,18 병행 참조)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교회의 역사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마르타의 완전한 신앙고백은 거의 과거에 묻혀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요한 복음은 마르타가 초대교회에서 모두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오늘도 마르타는 믿음으로부터 행동하는 용기 있는 여인들, 소심과 주저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여인의 모범이 되고 있다.

[쌍백합, 제14호, 2006년 가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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