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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막달레나 마리아 - 사도 중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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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2 조회수3,374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막달레나 마리아 - 사도 중의 사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증인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는 예수의 충직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셨을 때 오랫동안 그 무덤에 머물러 있다가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에 예를 갖추기 위해 그 무덤을 가장 먼저 방문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주님을 마음 깊이 사랑했던 이 여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루카복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열두 제자와 함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셨는데, 거기에는 악령과 질병에 시달리다 치유되었던 여인들도 함께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들은 곧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2-3)


그녀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


마리아는 겐네사렛 호숫가의 막달레나라는 도시 태생이다. 이 도시는 어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떤 남자와도 결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위에서 거명된 요안나의 경우처럼 그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남편의 이름으로 불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남편의 이름대신 출신지명이 붙여졌다.

그가 겪었던 질병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질병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신 신체 의학에 해당하는 질병이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질병들과 그 현상들을 대부분 악령에 관련된 것으로 간주했다.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깊이 만남으로써 자기 질병을 치유 받았다. 그는 이 치유를 자기 존재 전체가 구원받는 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 병은 자신의 삶과 존재 전체를 항상 짓누르던 고질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확고한 신뢰와 오롯한 마음으로 그분을 추종했다. 아울러 자신의 재산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함께 나누었다.


큰 죄인?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 어떤 인물이었고 또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복음사가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루카는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인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으셨을 때 그분의 발에 기름을 부어드렸던 큰 죄인인 여인을 익명으로 먼저 소개한 다음(루카 7,36-50), 이어서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를 거론하기(루카 8,1-3)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은 루카복음사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그 죄인을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와 동일시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다니아의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야기되었다(요한 12,1-8 참조). 마리아는 미리암으로서 당시에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막달레나 마리아, 죄인인 익명의 여인, 베다니아의 마리아 등은 본래 서로 다른 세 여인들이었는데, 교회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안타깝게도 이들은 서로 뒤섞여 거론되었다.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는 예술의 세계와 문학 작품에서 종종 회개한 죄인으로 다루어졌고, 그림으로는 드물지 않게 유혹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지 못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주변에 모인 여성 그룹 가운데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 베드로가 모든 제자들 가운데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듯이,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는 여성신자 가운데서 첫째가는 자리를 차지했다.


죽음과 부활의 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보도에서 중대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네 복음사가들의 일치된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묻히심과 부활의 증인이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등의 진술에 의하면, 예수님을 추종했던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던 날 모두 도망쳤지만, 몇몇 여인들은 그분을 떠나지 않고 - 어떤 경우는 비록 ‘멀리서’이지만(마르 15,40) -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인들은 예수의 시신이 묻히는 곳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가장 먼저 무덤에 달려갔다(마르 15,47; 16,1-9; 마태 27,61; 28,1-10 참조).

요한복음사가는 더욱 인상적인 내용을 전해준다(요한 20,11-18 참조). 그는 마리아가 무덤 입구에 서서 우는 모습을 전해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삶을 철저하게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던 것이다. 그는 천사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13절)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인간으로서 만지고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하나의 인간과 여인으로 온전히 받아주신다는 확고한 희망을 주셨고, 이를 마리아는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가 지금 예수님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붙들려고 하는 태도, 곧 그분의 시신에 마지막 예를 갖추려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셨다. 곧 당신 자신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길을 알려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향해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고, 이에 그는 ‘선생님이여’라는 뜻인 “라뿌니” 하고 응답한다(16절). 여기에서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에는 아주 긴밀한 관계가 맺어짐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다른 모든 (남성) 제자들에 앞서 그에게 먼저 발현하셨다는 사실을 이런 긴밀한 관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고통을 겪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버지께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붙들지 마라!”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영광스러운 과제를 맡기신다. 곧 그녀가 보았던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라는 과제를 주신다. “내 형제들에게 가라.”(17절)

당시 유다인들에게 여성의 증언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제자들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부질없는 “헛소리”(루가 24,11)로 여긴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시 여성들의 말이 공공연하게 경시되고 무시되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막달레나 여자 마리아의 신앙과 사랑과 용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그는 결정적인 신앙의 증인, 사도가 되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령께서는 막달레나 마리아를 사도들 가운데 사도로 만드셨습니다.”(Sermo 132,1)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계신다 - 체험했고, 여기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힘을 얻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곧 예수님의 현존을 추구하고, 그분 안에 머물고, 이런 내적 결합으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은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쌍백합, 제15호, 2006년 겨울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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