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여인: 사울의 딸 미칼 - 외적 화려함과 교만에 빠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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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6-03 | 조회수2,913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여인] 사울의 딸 미칼 외적 화려함과 교만에 빠져 아이 못 낳는 여자로 전락 사무엘기 상권 · 하권은 우리에게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초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전해준다. 곧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그 원수들인 필리스티아 사람들, 그 자녀들과 부인들 등에 관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부인들은 대부분 아주 간략하게 그 이름들만 거명된다.
그런데 성경은 사울의 딸 미칼에 대해서는 다른 여인들에 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 비교적 많은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성경이 미칼의 생애와 다윗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가 감성이 풍부하고 공명심을 높은 여인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미칼은 아버지 사울에 의해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사울의 추격에서 다윗을 구한 미칼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전리품을 챙겼기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를 크게 샀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느님의 분부에 따라 젊은 목동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다. 사울은 다윗에게서 호감을 느꼈지만, 또한 그가 자신의 왕좌를 넘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어쨌든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무기병으로 삼았고, 악한 영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다윗에게 수금을 타게 하였다. 그는 다윗이 필리스티아의 장수 골리앗을 쳐 이긴 일과 계속되는 전투에서 거두었던 승리들을 시기했고, 마침내 다윗의 목숨을 해치기로 결정하여 그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런데 사울의 딸 미칼은 다윗을 사랑하였다. 이런 사실을 “누군가 사울에게 알리자, 사울은 그것을 잘된 일로 보고서 이런 궁리를 하였다. ‘그 애를 다윗에게 아내로 주어야겠다. 그래서 그 애를 미끼삼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그를 치게 해야지”(1사무 18,20-21). 사울은 자기 딸 미칼과의 결혼 조건으로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니까 사울은 다윗이 격렬한 전쟁터에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하기는커녕 도리어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이백 명이나 쳐 죽였다. 그 결과 사울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딸 미칼을 다윗에게 아내로 내주었지만,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고, 자기의 딸 미칼마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아 알았기”(1사무 18,28)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평생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 미칼은 아버지 사울의 이런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게다가 미칼은 자기 자신이 아버지의 권력놀이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조금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직접 나서서 요나탄과 함께 다윗이 아버지의 음모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베풀었다. 곧 다윗의 도주를 도왔다. 이 도움으로 미칼은 다윗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사울은 미칼을 다른 남자인 팔티엘에게 아내로 내주었다(2사무 3,15 참조). 도망 다니던 다윗도 이즈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결혼했고, 나중에는 아비가일과도 결혼을 한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은 다음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계속하여 여러 여자들을 자기 아내로 맞아들였다(2사무 3,2-5 참조). 미칼은 다윗을 다시 되찾지만 영원히 빼앗긴다 얼핏 보기에 다윗은 미칼은 완전히 잊지 않은 듯이 보인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두고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과 싸웠다. 그러나 이 싸움은 사울의 장수 아브네르가 이스 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을 편들자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다윗은 미칼을 다시 자기에게 돌려달라는 조건을 걸고 아브네르와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 아브네르는 미칼을 남편 팔티엘에게서 빼앗는다. 팔티엘은 미칼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미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울면서 따라 갔지만, 나중에는 그만 포기하고 만다. 이스 보셋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다음, 다윗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곳에 살던 여부스 주민들을 내쫓고, 예루살렘을 재정비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된 나라의 예배 중심지로 삼으려고 했다. 때문에 그는 계약의 궤를 유다에서 모셔 오게 했다. 그는 궤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제사를 봉헌했고, 예루살렘까지 거리에서 축제를 지내도록 했다. 수금을 타고,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며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했다.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2사무 6,14). 이리하여 계약의 궤는 찬미 속에서 시온으로 옮겨 잘 준비된 성막에 모셨다. 미칼은 편안한 거실의 창문을 통해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칼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2사무 6,16). 미칼은 짧은 사제 옷을 입고서 춤을 추는 다윗의 모습이 왕의 품위에 크게 어긋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윗이 궁전에 돌아왔을 때 미칼은 다윗이 왕으로서 품위를 잃고 건달패처럼 자기 신하들의 여종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는 등 모욕을 당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다윗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그 집안 대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바로 그 주님 앞에서 내가 흥겨워한 것이오.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저 여종들에게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2사무 6,21-22). 다윗은 왕의 품위를 미칼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했다. 곧 왕의 품위는 어떤 외적인 모습과 절대적 권력의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선택과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이행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왕직은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다. 성경은 마지막으로 미칼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그 뒤 사울의 딸 미칼에게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2사무 6,23). 그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벌을 받았고, 따라서 미래에 오실 왕과 완전히 단절된다. 그는 그야말로 버림을 받는다. 미칼은 다윗을 알게 되었던 그 처음에는 그를 분명히 사랑했다. 다윗은 미칼의 용기 덕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윗이 왕에 오르고, 이제 입장이 바뀌어 미칼의 생명을 보장해주었을 때, 미칼은 외적인 모습에 지나치게 현혹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남편 팔티엘의 근심 걱정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는 왕직의 종교적 차원을 완전히 무시하였다. 자기 남편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만끽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미칼을 특별히 비난할 권한은 없다. 우리 가운데 과연 누가 교만과 자만심에서 완전히 자유롭단 말인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대중의 찬사를 받게 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식별하는 눈을 갖는 일은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리가 외적으로 누리는 성공은 순전히 우리 노력의 결실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고린 1,29. 31). [쌍백합, 제25호, 2009년 여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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