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여인: 리츠파 - 무참히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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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6-03 | 조회수2,731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여인] 리츠파 무참히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 깊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상징 사울 임금의 후궁 리츠파는 구약성경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인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리츠파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울이 언제 리츠파를 자기 집에 온전히 받아들였는지 우리는 모른다. 사울은 본부인 아히노암에게서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었다. 리츠파는 사울에게 두 아들 아르모니와 므피보셋을 낳아 주었다(2사무 21,8 참조). 사울의 두 여자, 아히노암과 리츠파의 관계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혈통처럼 암울하기만 하다.
아브네르와 이스보셋의 싸움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남족 유다의 임금이 되었다. 그때 이스보셋은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고, 또한 임금으로서 북쪽 이스라엘을 계속 통치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다윗은 북쪽 이스라엘도 자기 나라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임금의 계승을 둘러싸고 사울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 아브네르와 이스보셋에 맞서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전쟁은 아브네르와 이스보셋의 암살로 끝나고, 결국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다. 아브네르는 처음에 살아남은 사울 임금의 아들 이스보셋이 북쪽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러나 어느 날 이스보셋은 아브네르에게 “장군은 어찌하여 내 아버지 후궁을 범하였소?” 하고 나무랐다. 이 질책을 들은 아브네르는 결국 이스보셋이 임금의 자리에 앉는 희망을 접어버렸다. 바로 여기에서 사울의 후궁 리츠파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후궁 리츠파는 거의 남자들의 관점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아브네르가 리츠파와 사랑을 나누었던 일을 리츠파가 마음으로 동의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때 리츠파가 무엇을 느꼈으며, 리츠파가 도대체 누구인지 등에 대해서도 설화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아브네르는 화가 나서 이스보셋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유다의 개 대가리란 말이오? 오늘날까지 나는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안과 그분의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소. 그런데도 당신은 오늘 한낱 여자에 관한 잘못을 들어 나를 꾸짖으시오?”(2사무 3,8) 당시 남자는 자신과 밤을 함께 보낸 여자에 관해 업신여기며 말할 수 없었다. 이스보셋이 제기했던 문제는 리츠파의 명예가 확실히 아니었다. 이스보셋은 아브네르가 자기 자신을 사울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런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스보셋은 항상 아브네르의 힘에 눌려 그의 그늘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브네르를 두려워하였다(2사무 3,11 참조). 이런 싸움이 벌어진 다음에 아브네르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다윗을 편들었다. 곧 다윗이 북쪽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길 바랐다. 아브네르가 다윗과 계약을 맺고 이스보셋을 배반하자, 다윗과 이스보셋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의 최고사령관이었던 요압은 일전에 자기 형제 아사엘을 살해했던 아브네르를 다윗 몰래 피로 복수했다. 다윗은 나중에 이 보복 소식을 듣고 요압을 질책하는 한편, 정중한 예를 갖추어 아브네르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백성은 다윗의 이런 태도를 좋게 보았다. 다윗은 이렇다할 잘못을 범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적수였던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사울 후손의 죽음과 리츠파의 성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다음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유다 바알라에 가서 계약의 궤를 옮겨온다. 그는 필리스티아인 군대를 쳐부수고,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물리쳤다. 다윗의 이야기는 몇 가지 사건을 추가하며 마무리된다(2사무 21장). 이 추가사건은 주로 사울 후손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온 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것은 사울과 그 가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살인죄 때문이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다윗에게 사울의 아들들과 조카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당연히 피로 복수할 수 있고, 또한 씨족 전체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율법에 상응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다윗은 이 요구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계기로 삼거나 혹은 자신의 통치권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선임자 사울의 가문을 뿌리 뽑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신에게 조건 없이 항복했던 요나탄의 아들만 살려 두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사울과 리츠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들과 다섯 조카들을 넘겨주었고, 그들을 기브온 사람들은 “산 위에 올라가 주님 앞에서”(2사무 21,9) 나무에 매달았다. 그들 일곱은 그렇게 함께 죽었다. 이런 어둠의 상황에서 리츠파가 다시 등장한다. 그녀는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주검을 지켰다. 그리하여 간절히 기다리던 단비가 내릴 때까지 그 주검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내려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달려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설화자는, 리츠파가 주검 옆에서 많은 고통을 견디어냄으로써 흉년과 기아를 이제 그만 끝내주시라고 하느님께 간청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어쨌든 다윗은 리츠파가 한 일을 전해 듣고 감동한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탄의 뼈를 야베스 길앗에서 가져 오게 하고, 나무에 매달려 죽었던 일곱 사람의 뼈도 거두어들이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 뼈들을 베냐민 땅 첼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무덤에 합장하게 했다. 리츠파 - 슬픔에 잠긴 모든 어머니의 자매 오늘날도 수많은 여인이 리츠파처럼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한 아들로 인해 변두리에 밀려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것은 과연 여성의 전형적인 운명인가? 여성은 세상에 생명을 낳아준 다음, 그 생명이 잔인한 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단지 바라보아야만 하고, 마침내 죽음의 비극을 맛보아야 하는 운명인가? 만일 세상 사건들의 이야기들이 아브네르, 이스보셋, 다윗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남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과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 완전히 변화된다고 확실할 수 없을 것이다. 다윗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주검의 세계 곧 남자들에 의해 결정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세계도 있다. 그것은 여자들이 권력과 이기심으로 인해 모든 것을, 심지어는 자신의 자녀마저 희생하는 세계이다. 남자든 여자든 모든 사람에게는 폭력의 행동이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런 어두운 측면을 어떻게 관리하고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과연 생명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쪽으로 우리의 모든 힘을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분별없이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혹은 우리가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스스로 악행과 폭력을 일삼음으로써 생명의 가능성을 아예 파괴하고 있는가? 우리는 리츠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자신의 아들들과 사울이 조카들이 살해된 다음에도 그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삶을 계속 영위했던가? 아니면 권력자들의 손에 늘 좌우되는 비참한 삶을 살았는가? 사울과 그 후손들이 무덤에 평안히 묻힌 다음, 그에게는 어떤 일이 계속 일어났는가? 어쨌든 리츠파의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망각되지 않았다. 그는 다윗의 후계자 가운데 수많은 영웅들과 더불어 이스라엘 역사의 한 쪽을 장식하고 있다. 리츠파, 그는 인류역사 안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 깊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상징한다. [쌍백합, 제32호, 2011년 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화산동 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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