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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의 세계: 압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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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7 조회수2,945 추천수1

[성경의 세계] 압살롬 (1)

 

 

압살롬은 다윗이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들이다. 미루어 보건대 다윗은 압살롬을 편애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총명했고 준수한 용모에 남다른 용기를 지닌 젊은이였다. 어쩌면 다윗은 압살롬에게서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압살롬이 살해되었을 때 체면 불고하고 소리치며 울었다.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고선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사랑했던 것이다.

 

허나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고 무력으로 제거하려 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뺏으려 했던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성경에서는 왕자들의 불목이 빚은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일찍이 예언자 나탄이 선언했던 일이라고 한다(2사무 12.10-11).

 

다윗은 부하의 아내였던 밧 세바를 얻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게 했다. 당시 왕정체제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율법의 사람이었던 다윗에게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나탄은 준엄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야를 죽인 보속으로 다윗 집안에는 칼부림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선언이었다.

 

압살롬 사건은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장남 암논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풍습에 따라 다윗은 여러 부인을 두었기에 이복(異腹)자녀들이 많았다. 암논은 둘째 부인 아히노암이 낳았고 압살롬과 그의 여동생 타마르는 넷째 부인 마아카에게서 태어났다. 마아카는 국경지대에 살던 그수르(Geshur)족 출신으로 왕의 딸이었다. 그수르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딸을 다윗에게 바쳤던 것이다.

 

암논은 타마르에게 연정을 품었다. 왕의 후계자로 지목된 암논이었기에 연정은 소유욕으로 바뀐다. 하지만 율법에 금지된 일이었기에 타마르는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암논은 계략을 꾸며 여동생을 범하고 만다. 문병 온 타마르를 겁탈한 것이다. 그런 뒤에는 마음이 변해 타마르를 학대하며 무시했다. 사건을 알게 된 다윗 역시 분노했지만,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타마르는 친오빠 압살롬의 집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사람들로부터 잊히기를 바라며 죄인으로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압살롬은 잊지 않았다. 암논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압살롬 (2)

 

 

복수의 기회를 기다리던 압살롬은 마침내 암논을 살해한다. 양털 깎는 잔치에 암논을 초대한 뒤 부하들을 시켜 제거한 것이다(2사무 13,29). 타마르를 범한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모두들 잊고 있었지만, 압살롬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어머니의 고향 그수르 왕국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3년 뒤 돌아올 수 있었다. 다윗이 요압 장군의 간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왕궁 출입은 금지되었다.

 

궁에는 둘째 아들 킬압이 있었다(2사무 3,3). 왕권은 그에게 돌아갈 것이다. 압살롬은 이복형 킬압을 믿지 않았다. 그가 왕이 되면 자신의 운명은 끝이라 생각했다. 마침내 압살롬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계책을 꾸민다. 다윗과 밧 세바의 관계를 부각시키며 아버지의 부당함을 폭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종자들이 늘어나자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이전 수도다. 다윗이 예루살렘 중심 정책을 펴자 반골도시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압살롬은 쿠데타 세력과 함께 왕궁으로 진격했다. 소식을 접한 다윗은 아들과의 싸움이 내키지 않은 듯 피신했다. 입성한 압살롬은 자신에게 족쇄를 채운다. 다윗의 후궁을 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칼을 겨누는 관계가 되었다. 나탄의 예언은 무섭게 이루어진 것이다.

 

싸움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 개인에게 내려진 보속이었기에 주님께서 마무리하실 일이었다. 그러기에 숲으로 도망가던 압살롬은 살해되고 쿠데타는 종식된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유난히 슬퍼한다. 무심코 읽으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으로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압살롬을 죽였다고 받아들인다. 그의 반란은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압살롬 사건은 다윗에게 충격과 함께 깨달음을 남겼다. 한낱 양치기 소년에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개입 때문이라는 깨달음이다. 이후 다윗은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압살롬은 노년의 다윗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죽은 압살롬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의 이름 역시 타마르였다(2사무 14,27). 압살롬 사건은 3천 년 전 일이지만 낯설지 않다. [2013년 6월 23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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