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6: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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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7-01 | 조회수2,818 | 추천수1 | |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히브리서의 저자가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요약해 놓았습니다. 구약의 여러 주제들이 신약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다교의 경전인 히브리 성서의 여러 주제들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수용됩니다. 이제부터 여러 달 동안 우리는 우리 신앙의 굵직한 주제들이 어떻게 유다 민족의 성서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사귀고 싶으셨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친구가 아쉬우셨던 것은 아닙니다. 아쉬웠던 것은 인간이지요.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창세 1,26 참조) 하느님 없이는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 인간입니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인간은 하느님을 그리워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할 때라야 인간은 온전해집니다. 이런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은 당신을 알려주십니다. 계시헌장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성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알려주기를 원하셨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창세기에서부터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히브 1,1)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심을 체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호칭은, 이스라엘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 성조들이 만났던 하느님, 성조들에게 말을 걸어오신 하느님임을 드러냅니다. 후손들은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기억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시고 후손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야곱에게 그의 여정을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들어서 압니다. “하느님, 저희 귀로 들었습니다. 저희 조상들이 저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시편 44,2).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점차로 알게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보고 사귀시던 사람”(신명 34,10) 모세가 있습니다. 모세 때에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하여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신 다음 - 저는 이집트 탈출을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는 증명사진이라고 부릅니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 그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가르쳐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지요. 이렇게 율법까지 주신 다음에는 모세의 뒤를 잇는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들은 그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말씀의 힘을 체험했습니다. “사자가 포효하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으랴?”(아모 3,8)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서도 “우리 가운데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루카 7,16 참조).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분명 예언자들이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과 행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다른 예언자들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고 아버지의 외아드님이시며(요한 1,14)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1). 예수님은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생명의 말씀”이셨습니다(1요한 1,1). 하느님에 대해 듣고 말해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하느님이시고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마지막 때에”(히브 1,1)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려주신 방법이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이제 그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알려주셨는지 봅시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이스라엘이 목숨 걸고 지켰던 신앙입니다. 십계명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계명이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 20,3)는 것이지요. 처음에 이 계명은, 철저한 유일신 사상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다른 신들 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에 다른 민족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모세 율법은, 다른 신들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문제 삼지 않았고 다만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오직 한 분께 대한 사랑이라야 진정한 사랑일 수 있고, 이스라엘은 오직 한 분께만 속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유배 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분명한 유일신 신앙이 형성됩니다. 제2이사야는 우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그 우상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이전과 다른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 이지요. 위에서 인용했던 신명 6,4의 말씀, 곧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는 말씀도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아 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신들이란 아예 헛것이라는 내용을 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한 유일신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유일신 신앙 때문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이라고 믿었기에,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졌습니다. 철저한 유다교 신앙에서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해서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두 분이시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지금까지 유다인들이 한 분이라고 믿었던 바로 그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에서와 같은 유일신 신앙을 간직합니다. 나중에 삼위일체 교리까지 말하게 될 때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일체”, 한 본체이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데에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 유일신 신앙과 창조 신앙은 함께 갑니다. 구약성경 안에서도 같은 시기, 곧 유배 중에 유일신 신앙이 확립되어 가면서 창조 신앙이 부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시라고 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특히 제2이사야와 창세기의 첫 부분에서 창조 신앙이 표현됨을 볼 수 있고, 창조주로서 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고백은 시편과 예언서 등 성경 여러 부분들에 나타납니다. 제2경전 특히 마카베오기에서는 히브리 성경에서보다 더 구체적인 창조신앙이 표현됩니다(2마카 7,28 등). 신약시대에 창조 신앙은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교리였습니다. 창조 신앙은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에, 신약성경에서는교리를 가르치듯이 창조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곳에서 창조 신앙을 바탕으로 한 진술들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특별한 점은 창조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역할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창조는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고,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 서문에서는 모든 것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고 말합니다. 창조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지혜가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주요한 몇 가지 모습, 곧 말씀하시는 하느님, 한 분이신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이라는 주제들을 살펴볼 때에 우리는 유다교 성서(구약성경)의 신앙이 그리스도교 성경(신약성경) 안에 보존되면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을 보여주시고, 하느님과 한 분이시고, 그분을 통하여 창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안소근 실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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