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24: 고대 근동와 성경의 가시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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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7-27 | 조회수3,573 | 추천수1 |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4) 고대 근동와 성경의 가시나무 가시, 하느님 상징하는 성경 속 코드 지난 시간에 이어 인류 최초 장편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길가메쉬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 엔키두를 잃은 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후 그는 영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영생을 갈구한 길가메쉬는 태초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죽음의 강을 건너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비밀을 물었지만, 그는 "돌아가라"란 말만 했다. 낙담한 채 돌아가려던 길가메쉬를 가엽게 여긴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남편에게 "길가메쉬는 여기까지 오느라 지쳤어요. 무슨 선물을 하실 거죠?"라고 질문한다. 영생의 식물 가시나무 아내의 말을 들은 우트나피쉬팀은 신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거기서 영생의 비밀을 지닌 가시나무에 대해 말해준다. "그 가시는 장미처럼 네 손을 찌를 것이고, 네 손이 그 식물에 닿으면 너는 다시 젊은이가 될 것이다." 길가메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시덤불을 움켜잡는다. 고통을 무릅쓰고 가시를 잡는 그에게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디어 길가메쉬는 소망하던 영생의 비밀을 얻었다. 그는 기쁨에 차 가시나무의 이름을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다'로 지었다. 길가메쉬는 고향으로 가시나무를 가져가 노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다. 참 진리를 깨달은 이들이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과 같다. 영생이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을 넘어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 영생의 본질은 영원한 젊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힘도 없이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영생과 다르다. 길가메쉬도 젊음을 되찾아 영생을 얻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소원을 이룬 길가메쉬가 샘물가에서 잠시 잠에 빠진 사이 뱀이 나타나 영생의 비밀인 가시나무를 가져가 버렸다.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야기는 끝난다. 영생의 식물인 가시나무를 움켜쥔 체험이 그의 몸과 마음과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아픔처럼 남아 있는 것. 길가메쉬 서사시는 깨달음을 전한다. 가시에 찔린 아픔은 깨달음에 대한 비유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하느님 뜻을 알아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한 깨달음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잊힌다. 마치 가시덤불을 쥐었던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그 체험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서사시보다 1000년이 지난 후에 나온 구약성경은 셀 수 없이 많은 고대 근동의 체험과 문화가 축적된 문헌이다. 구약성경은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에 대한 성찰과 문화적 토대 위에 이스라엘이 지닌 야훼 하느님을 향한 독특한 믿음을 표현한 수준 높은 책이다. 가시의 의미 길가메쉬 서사시의 가시나무는 아카드어로 '엣데투'라고 했다. 구약성경에서 가시나무는 히브리어로 '아타드'이다. "가시나무 불(아타드)이 너희 솥을 뜨겁게 하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날로든 태워서든 그 안의 것을 없애 버리시리라"(시편 58,10). 여기서 아타드를 주님의 별칭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판관기 9장에 나오는 '요탐의 우화'는 참된 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판관 9,8-9).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게 가서 임금이 돼달라고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가시나무에게 가 임금이 돼달라고 청하자 가시나무가 답한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판관 9,15). 예전에는 아타드를 가시덤불로 해석했다. 성서식물학에서는 가시덤불을 10m가 넘는 나무로 본다. 현대에는 가시덤불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가시나무(Christ Thorn)이라고 지었다. 이 나무로 예수님의 가시관을 만들었다고 봤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에서 나는 값진 선물과 덤불(가시덤불, 떨기나무)에 사시는 분의 은총으로 복을 받아라"(신명 33,16). 구약성경은 하느님을 가시덤불에 사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에서 떨기나 덤불이란 단어가 나올 때 가시가 있음을 염두에 두자. 그 가시는 하느님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 죄를 사하러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는 가시관을 쓰셨다. 마치 탈출기 3장에서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 것과 매우 흡사하게, 예수 그리스도 또한 가시관 안에 계셨다. 두 장면 모두 가시라는 통일된 모습에서 하느님의 상징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시관은 '영광과 존귀의 관'이었던 것이다(히브 2,9 참조). 이처럼 가시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부터 구약ㆍ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관통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코드다. [평화신문, 2013년 7월 28일, 정리=이정훈 기자]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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