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8: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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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8-16 | 조회수2,875 | 추천수1 | |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핵심에 도달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다는 부분입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로마 9,2)을 가지고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이방인의 사도에게는 이방인들만 중요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음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바오로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선택과 계약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집트 탈출 이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이 따라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알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분명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이집트 탈출 때에, 시나이 산에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은 그 전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첫 계약은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입니다(창세 9장 참조).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인류와, 모든 피조물과 맺으신 노아 계약을 통하여 하느님은 그들 모두와 관계를 맺으시고, 다시는 그들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일방적인 하느님 편에서의 약속입니다. 더 범위를 좁힌 계약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입니다. 창세기 15장과 17장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약속하시며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창세기 15장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짐승들을 쪼개어놓은 뒤 하느님은 그 사이를 지나가시지만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도, 약속을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아닌 하느님이십니다.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느님께 속한 표지로 할례를 받게 됩니다.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탈출기에서(특히 19-24장), 하느님께서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에 태워 데려내 오신 것을 본 이스라엘은, 계약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소유가 됩니다(탈출 19,4-5 참조).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고, 이스라엘이 파라오가 아닌 야훼 하느님을 그들의 주님이며 임금으로 섬기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이집트 탈출을,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으로 축성된 사건으로 나타냅니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주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5). 히브리어 단어 ‘거룩함’은 따로 떼어짐을 뜻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 속한 백성으로서, 그 거룩함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매우 강조하는 신명기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오직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였다고 말합니다(신명 7장 참조). 이스라엘 편에서 선택의 근거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만큼 수가 많거나 충실한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목이 뻣뻣한” 백성입니다(신명 9장 참조). 계약의 실패와 회복 하느님의 선택을 믿고 안일하게 살던 이스라엘에게 아모스 예언자가 일깨웠듯이, 선택에는 응답이 있어야 했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여러 차례 사용되지요.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랑이 되어야 했습니다.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에게서는 다른 민족들에게서보다 많은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세상 전체를 위한 임무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러한 사랑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구약성경은 되풀이하여 들려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탈출기 32―34장에서 보여주는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시나이 계약을 맺고 얼마 되지 않아 벌어졌지요. 사실 이 본문에는 이집트 탈출 때만이 아닌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만을 유일한 사랑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가 돌판을 던져 깨뜨렸다는 것은 계약이 파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모세가 깨뜨린 돌판을 다시 만들어주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한 번 실패로 돌아간 다음에도 하느님은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실패는 바빌론 유배로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역사가들은 바빌론 유배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충실치 않았던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깨뜨린 돌판을 다시 새겨주신 그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다시 손을 내미십니다. 이스라엘 편에서는 이미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할 상황에서도 하느님은 다시 새 계약을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에제키엘을 통해서 선포하신 새 계약은 온전히 하느님 편에서 주도권을 잡고 깨어진 관계를 다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가기 전에 하느님 편에서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새 계약 그렇다면 신약에 이르러서는? ‘신약’이라는 표현부터가 새 계약을 의미하지요.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맺어진 새 계약을 말합니다(1코린 11,25 참조). 히브리서는 첫 번째 계약의 불충분함을 대체하고 완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먼저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마태 15,24)을 찾아가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처음엔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유다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복음은 이방인들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이방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됨을 뜻하지 않습니다. 앞서 구약에서 우리가 보았던 하느님은, 당신을 배반하는 인간을 물리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부를수록 이스라엘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갔다고 하시면서도 끝까지 그 이스라엘을 어린 아들처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구약의 하느님이셨습니다(호세 11장 참조). 지금도 ‘하느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고, 거기에 다른 많은 민족들이 결합된 것입니다. 접붙여진 올리브나무 이스라엘의 선택에 관하여 가장 깊이 다루는 본문은 로마서 9-11장인데, 그 핵심은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로마 11,29)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바오로는 한편으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며 약속의 자녀라야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은 미리 뽑으신 당신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다고 단언합니다. 이스라엘은 참올리브나무입니다. 그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나가고, 야생올리브 가지인 이방인들이 접붙여져 그 올리브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된 것입니다. 참올리브나무의 뿌리가 접붙여진 야생 올리브 가지들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로마 11,25)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이것을 하느님의 ‘신비’라고 말하며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를 찬미합니다(로마 11,33-36 참조). 신약은 이스라엘이 거부당했다고 말한 일이 없으며, 교회는 유다 민족을 ‘맏형’이라 부릅니다. 이스라엘 없이는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그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선택과 계약은 영원하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 백성으로 택하셨던 이스라엘과 함께,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로마 9,5).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안소근 실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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