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헤로데와 하느님의 성전
2000년 전 유다의 영주 헤로데는 건축왕이다. 열혈당원들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마싸다 요새, 요한 세례자가 순교했다는 마캐루스 요새, 그리고 카이사리아 항구 등, 이스라엘의 쟁쟁한 유적지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스라엘 관광 산업의 큰 몫을 헤로데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역사적으로 괄목할 만한 기념비적 인물이다.
- 헤로데가 지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그중에 헤로데의 최고 작품은 단연 하느님의 성전으로서, 예수님도 헤로데가 보수한 성전에서 활동하시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헤로데가 유대인들의 성전을 웅장하게 보수 공사한 이유는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이두메 사람, 어머니는 나바테아 여자로서 헤로데는 유다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앞잡이들을 싫어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로마를 등에 업은 헤로데를 미워했었다. 그래서 왕위에 대한 그의 강박 관념은 심할 수밖에 없었고, 아내인 마리암과 하스모니안 왕가 사람들을 살해하고 친아들마저 죽이는 잔인함을 보인다. 오죽했으면 사람들 사이에 “헤로데의 아들이 되느니 헤로데의 돼지가 되는 게 낫다”는 속담이 돌았다고 하니, 그 정도가 도를 넘었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오자(마태 2,1-12), 유다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에 헤로데가 긴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건축에 관한 치적만큼은 눈부실 정도다. 특히 헤로데가 성전을 쌓는 데 사용한 돌의 무게는 개당 2~3톤 정도로서 가장 큰 것은 570톤에 달했고, 최고 길이는 13미터에 이르러 버스보다 길었다. 성전을 크게 확장하기 위하여 모리야 산을 깎아 평평하게 하는 작업을 할 때, 다른 지역보다 높은 북쪽의 돌을 채석하여 충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자기가 사용한 돌에는 독특한 문양을 새겨놓아, 그의 작품은 어디서든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타락해 가는 예루살렘을 우러러 한탄하시며 성전 파괴를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23,37)처럼, 성전은 서기 70년에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성전 터가 모하메드의 승천지로 바뀌어 황금 사원이 세워졌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사원이 예루살렘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80 킬로그램의 순금으로 장식된 돔과 기하학적으로도 완벽하게 지어졌다는 황금사원. 이곳을 둘러싼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종교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성전산에 서면 솔로몬부터 헤로데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역사가 소리 없이 들려오는 듯하다.
[2013년 9월 22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