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13: 율법학자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마르 12,38-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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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10-12 | 조회수3,411 | 추천수1 | |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 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13) 나 새롭게 발견하기(마르 12,38-44) 위선 교만으로 가득찬 신앙 멀리하라
율법학자와 가난한 과부에 대해 살펴보자.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의로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배우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가르침을 주는 대표적인 사람은 율법학자였다.
이들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해설하고, 백성에게 삶으로 적용시키도록 가르쳤으므로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에 있는 학식만으로는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하신다. 참된 신앙은 높은 학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깨달은 것으로 전할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고발하신다. 가난한 과부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계시다.
엄밀히 말하면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 전승에 따라 내려오는 전통을 연구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하신다. 율법학자들에게서 경계할 점은 명예욕과 탐욕, 과시욕, 위선적인 기도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율법학자의 자리에 나를 놓고, 예수님은 나의 어떤 삶을 보며 경계하실까 하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의 과시욕은 그들이 기도하고,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에서 드러난다. 겉옷 자락 네 곳에 긴 술을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내보인다. 또 이들은 장터에서 시민들이 자기에게 깍듯이 인사하기를 바란다. 대중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보십시오 여러분, 나를 좀 봐 주세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율법학자들은 회당이나 잔칫집에 가면 높은 자리에 앉길 원했다. 좋은 자리는 저명인사가 앉는 자리다. 회당에 가면 모세오경을 보관하는 자리 앞쪽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잔칫집에 가면 윗자리에 앉길 원했다. 윗자리는 주인 옆자리다. 통상적으로 주인 옆자리는 원로들에게 내어주는 자리다. 주인 옆에 있으면 사람들 눈에 금방 띄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은 과부들의 후한 대접을 너무 좋아했다. 과부들은 남편이 남긴 유언에 따라 재산을 관리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과부들에게 법적 자문을 해주며 수수료를 받고 때로는 과부의 가산을 착취하기도 했다. 또 과부들을 위해 긴 시간 동안 기도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율법학자들이 경건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신심 깊은 체하기 위해 길게 기도하는 모습을 비난하셨다. 예수님이 남에게 보이는 위선적 신심행위, 사기행각에 집착하는 율법학자들을 단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태오 복음서 23장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선언을 하셨다.
겉으로는 고상하게 열심히 기도하면서 속내는 하느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과부를 비교하시면서 신앙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삶의 본보기를 제시한 이는 율법학자가 아닌 가난한 과부였다. 사람들에게 참 신앙인의 길을 보여준 사람은 율법학자가 아닌 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태오 복음서에 더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2-3).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삶을 본받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마태 12,38-40).
예수님이 지적하신 율법학자의 위선은 교만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인간적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당시 사람들은 거리에서 율법학자를 만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모아 "선생님" 혹은 "아버지" 하며 깍듯이 인사했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장터에 가서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을 즐겼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그 마음에 교만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달리 과부는 가난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 당시 여성들은 공개적으로 율법을 배울 수 없었고 결혼하기 전까지 어머니 밑에서 살림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과부가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000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궁핍한 가운데 가진 생활비를 모두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전부를 바친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돈의 액수에 달려 있지 않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지녀야 한다.
[평화신문, 2013년 10월 13일, 정리=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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