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 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15) 아버지의 뜻, 나의 뜻(마르 14,32-42)
온전히 아버지 뜻에 맡겨야
- 엘 그레코 작, '겟세마니의 기도', 1608년.
마르코복음의 종결 부분으로, 예수님의 수난사를 접하게 된다. 예수님이 수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장면이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때부터 예수님의 빈 무덤 사화까지를 수난사화(마르 14,1-16,8)라고 한다. 수난사화에는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 기도, 최고의회의 신문, 빌라도의 신문, 십자가 처형, 부활 등 다양한 전승이 섞여 있다. 사형선고를 당하신 다음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난사화에는 십자가 사건을 깊이 새길 수 있는 의미가 있다. 11장부터 보자.
예수님이 성전 정화를 하셨다. 성전 정화를 하시면서 성전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를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봤다.
심판의 날을 앞두고 깨어 있으라고 예고하셨다. 14장에 와서는 예수님이 당신에게 다가올 시련과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예루살렘 동쪽 올리브산에 겟세마니란 곳이 있는데, 겟세마니는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이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올리브 기름은 유용했다. 손님을 환대할 때나 잔치할 때는 올리브 기름을 발랐다. 팔레스티나 기후가 건조하기에 몸을 보습하기 위해 발랐다.
기름은 음식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됐다. 향수나 비누에도 올리브가 많이 쓰였다. 성경에 보면, 전통적으로 왕이나 대사제들이 특별히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했다. 이는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 풍요로움과 충만한 행복, 기쁨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날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고통과 불안에 싸여 기도하셨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여러 가지 귀감을 준다. 첫째, 예수님은 철저하게 혼자서 하느님과 대면하며 기도하셨다. 기도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셨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다. 셋째, 예수님의 기도가 가장 중요한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있다.
예수님은 공포와 번민에 휩싸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큰 공포와 번민에 싸여 계셨다. 예수님은 나약한 자신을 주님께 내어 보이면서 인간적인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마르 14,36).
이어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고 하셨다. 온전히 아버지 뜻에 생명을 맡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도가 끝날 무렵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마르 14,41-42). 당신 스스로 그들에게 나아가신다. 육체적 나약함을 버리고, 하느님의 힘으로부터 강해진 것을 볼 수 있다.
'탄원' 기도는 단순히 극도의 고통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굳은 믿음으로 구원을 간청하고 확신하는 기도였다. 겟세마니 기도의 세 가지 특징은 두려움에 대한 원천적 경험, 죽음의 힘 앞에서 느끼는 전율, 무(無)라는 나락에서 밀려오는 공포다.
예수님의 결단처럼 우리도 삶에서 빛을 선택할 것인지, 어둠을 선택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예수님은 빛과 생명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결단을 내리셨다. 겟세마니 기도를 통해 우리가 믿는 주님이 소름 끼치는 순간을 겪으시는 모습을 매우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또 자신의 생명에 고군분투하는 예수님과 피곤함 때문에 깨어 있지 못하는 제자들 모습이 서로 대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고통 받으셔야 했다는 점에서 우리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예수님은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나의 뜻을 식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나의 뜻을 하느님이 이루시도록 하느님께 주입시킨다. '하느님 꼭~' 하면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 주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하셨다. 성장해 가는 아기들이 아버지를 친숙하게 부르는 말이다. 우리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생활을 하면 좋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마르 14,42)고 말씀하신다. 당신 스스로 우리 죄인을 위해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평화신문, 2013년 10월 27일, 정리=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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