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공관복음 여행: 마르코가 선포하는 예수님 - 겸손하신 평화의 임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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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11-11 | 조회수3,395 | 추천수1 | |
공관복음 여행 (7) 마르코가 선포하는 예수님 : 겸손하신 평화의 임금
며칠 전 우리나라에 첫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새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었던 옷들과 청와대로 이동하는 중에 탔던 최고급 방탄차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관심 뒤에는 옷이나 장신구 또는 자동차 등이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예수님은 만민의 참 임금이지만 세상의 여느 왕들과 달리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임금의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평화의 행진을 하셨기 때문이다(마르 11,1-11).
당시 사회적 · 종교적 환경에서 예수님의 행렬은 왕이며 메시아이신 그분의 ‘격’(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당신이 이스라엘의 성조 야곱이 예고한 왕이며 즈카르야가 예언한 메시아임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다. 야곱은 유다 가문에서 나올 이스라엘의 왕을 다음과 같은 말로 예고했다.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으로 제 겉옷을 빤다”(창세 49,11). 또한 즈카르야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를 두고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
라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특별히 왕이며 메시아이신 그분의 신원을 밝혀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빌론 탈무드의 「기도 · 축복」 56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꿈에 나귀를 보는 이는 메시아의 왕국을 갈망하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일부 순례자를 제외하면, 도성 안에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다른 순례자들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시는 일에 반감을 품고 속임수로 사지에 내몰 궁리까지 한다(마르 11,27-33; 14,1ㄴ).
이처럼 예수님이 분명한 모습으로 당신이 메시아시며 임금이심을 드러내셨음에도 유다인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현실에서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즈카르야가 예고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실 왕 · 메시아는 유다인들의 지식 속에 있는 존재이고, 그들이 현실에서 바라는 인물은 지상 최고의 힘과 능력을 지니고 세상 모든 통치자를 압도하는 절대군주였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하느님의 대리자이며 유다의 왕 · 메시아의 격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세속적 논리로 하느님 백성의 왕 · 메시아를 기대하던 유다인들의 시선을 원점으로 돌려놓으시고자 성경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기대하는 왕의 권력과 메시아의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시는 겸손의 왕이며 평화의 메시아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담은 성경의 예언대로 행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세속의 논리나 바람이 아닌 신앙의 논리(복음)와 하느님의 뜻(성경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2013년 3월 18일 사순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전주가톨릭신학원 성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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