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여우
판관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붙잡아 꼬리를 비끄러맸다. 꼬리 사이에는 홰를 매단 뒤 불을 붙였다. 여우들이 길길이 뛰자 필리스티아인의 농장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판관 15,4-5). 삼손의 등장은 이렇게 여우사건과 함께였다. 필리스티아인의 간악함을 간사한 여우를 통해 응징한다는 메시지다.
‘얘들아, 여우들을 잡아라. 저 작은 여우들을, 우리 포도밭을, 꽃이 한창인 우리 포도밭을 망치는 저것들을.’ 아가서 2장 15절이다. 여우가 포도원 담에 구멍 뚫는 것을 방치하면 그 구멍으로 온갖 짐승이 들어와 밭을 망칠 수 있다는 암시다. 포도원은 신앙공동체를 상징했다. 여우는 유혹자를 의미한다. 에제키엘서는 거짓 예언자를 여우에 비유했다. ‘이스라엘아, 너희 예언자들은 폐허 속의 여우와 같구나.’(에제 13,4) 예수님께서도 당시 임금 헤로데를 여우라 하셨다(루카 13,32).
이렇듯 성경에 등장하는 여우는 교활함의 상징이다. 간사하고 음흉한 것이 교활함이다. 하지만 여우의 본능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영리하기에 그렇게 비춰줬을 뿐이다. 여우는 덩치가 작은데도 꼬리는 길다. 유난히 털도 많다. 다리는 짧은데 주둥이는 길다. 늘 혼자 다니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쳐다본다. 가까이 가면 피하는 척하면서 달아나지 않는다. 여우의 이러한 습성이 교활함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여우 편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과 아시아에 대체로 많으며 대부분 적갈색이다. 북아메리카에는 검은 여우와 은 여우라 불리는 흰색 여우도 있다. 겨울에 짝짓기하며 50일 정도 지나면 1~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예부터 여우모피는 고급 의류였다. 오늘날 여우모피는 야생 여우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여우를 사육해서 얻고 있다.
여우는 갯과에 속한다. 크기와 생김새도 매우 비슷하다. 히브리어로는 슈알(shual)이다. 성경에 9번 등장한다. 팔레스티나 여우는 북아메리카 여우와 같은 종으로 보고 있다. 영어로는 레드 폭스(red fox)다. 사막여우도 있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동굴에서 지내고 밤에만 활동한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는 말씀은 사막여우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2013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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