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82)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밀사들을 보내면서 이렇게 전하게 하였다. “나팔 소리를 듣거든 ‘압살롬이 헤브론의 임금이 되었다.’고 하시오.”(2사무 15,10)
사무엘기 하권 15-18장은 압살롬의 반란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압살롬의 반란은 사무엘기 하권 12장 10-12절 나탄 예언의 실현인 동시에 남북 지파들이 연합한 다윗 왕국의 취약한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친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임금 자리를 탐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자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게 한다.
절에 가면 법당에 소를 찾는 그림(심우도, 尋牛圖)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어떤 절에는 선불교 제6대조 혜능 스님이 부엌에서 방아 찧는 그림이 있다.
661년 선불교 제5대조 홍인 스님은 선불교의 법통을 누구에게 넘겨줄 것인지 고민하다가 제자들에게 게송(揭頌)을 지어보라고 했다. 그때 제자들 가운데 으뜸인 신수(神秀 605-706)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붙였다.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染塵埃(막사염진애)
우리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니
시시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에 물들지 않도록 하리
신수 스님의 글에 부엌데기로 있던 혜능(慧能 638-713)이 요즈음 말로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有塵埃(하처유진애)
보리수라는 나무가 본래 없고
명경대 역시 대(臺)가 아니니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나 티끌이 있겠는가?
이 게송을 보고 홍인 스님은 절의 부엌에서 일하던 혜능에게 법통을 넘겨주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익히 아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홍인에서 혜능으로 선불교의 법통이 이어지자 신수의 제자들이 자리를 빼앗겼다면서 혜능을 죽이려했다. 혜능은 남쪽으로 줄행랑을 쳐 15년 동안 사냥꾼들 속에 숨어 지냈다.
인간사회에는 ‘자리’가 문제다. 스님 자리, 목사님 자리, 신부님 자리, 주교님 자리, 예수님 자리, 부처님 자리. 불가에서 최고 스님들이 자리 때문에 죽이려들고 줄행랑을 치니, 세속의 중생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신부님 자리’는 또 어떤가? 새 신부 때의 겸손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주임신부가 되면 예수님 자리를 차지하려 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묵상주제
인간사회에서 ‘자리’는 또 다른 모습의 우상이다. 최고의 가치를 하느님께 두지 않고 권력, 명예, 자리 같은 것에 둔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상숭배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탈출 20,3).
지금 내가 섬기는 다른 신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2014년 1월 26일 연중 제3주일(해외원조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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