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사무엘기 하권의 부록(2사무 21-24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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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2-06 | 조회수4,226 | 추천수2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83)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2사무 24,2)
사무엘기 하권의 부록(2사무 21-24장)에는 두 개의 시(2사무 22장과 23장)를 중심으로 두 개의 자연재앙이 언급되었다. 사무엘기 하권 9장에서 열왕기 상권 2장까지가 연속적인 이야기(다윗 왕위계승 설화)인데, 부록에 해당하는 사무엘기 하권 21-24장이 흐름을 끊는다. 이것은 판관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판관기 17-21장의 부록이 판관기 3장에서 사무엘기 상권 7장에 이르는 판관들의 이야기를 끊고 있다.
신명기계 편집자들은 사무엘기 하권 21-24장 부록을 첨가함으로써 사무엘기 상하권을 열왕기 상하권과 분리시켰다. 다윗에 관한 전승을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부록 안에 여섯 개의 단편을 순차적으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모아놓았다. 다윗에게 귀속되는 두 개의 시(2사무 22장과 23장 1-7절)는 두 개의 영웅담(2사무 21,15-22과 23,8-39)의 틀 속에 들어가 있으며, 위 네 개의 단위 전체는 신명기계 편집자의 관심을 끌었을 두 개의 이야기 사이에 놓여 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다윗이 기브온 성소를 어떻게 더럽혔는지(2사무 21,1-14), 그리고 장차 성전이 설 장소를 어떻게 성화시켰는지(2사무 24장)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신명기계 편집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부록에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사무엘기 하권 24장이다. 다윗이 별 것 아닌 ‘인구조사’ 때문에 단죄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수기에도 두 번이나 인구조사가 나오는데(민수 1장과 26장), 다윗의 인구조사만 특별히 비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적인 이 인구조사는 통일왕국을 위한 재정구조의 재조직과 징병을 위한 기초작업이었던 것 같다.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을 겪으면서 다윗은 이런 결심을 더욱 굳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언자 집단은 이 인구조사를 하느님을 거역하는 죄로 낙인찍었다. 다윗의 인구조사가 부족동맹 시대의 잔재를 없애는 행정상, 재정상 혁신적인 조치를 마련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왕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보수적인 사람들이 분개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인구조사를 통해 다윗은 부족에게만이 아니라 임금에게도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에 특별히 예언자들의 반발을 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윗의 인구조사에 가드 예언자가 개입한 것은 예언자들의 이러한 반발을 암시한다. 아마도 다윗은 전국의 행정제도를 재조직하려고 계획했으나, 너무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북쪽의 지파들에서는 실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실시한 뒤, 자신의 행위가 인간적인 자만과 불신앙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회개했다. 다윗은 이렇게 인구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2사무 24,10).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의 핵심은 늘 나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윗의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 하느님보다는 인간적인 재주와 지략에 의지해 일을 계획하고픈 유혹을 받을 때, 하느님을 믿는 믿음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일을 도모하려는 욕심이 생길 때, 사무엘기 하권 24장 ‘다윗의 실패’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묵상주제
“마음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혀의 대답은 주님에게서 온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결백해 보여도, 영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1-2). [2014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84)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2사무 24,17).
사무엘기 상하권의 저자는 사무엘기 하권 24장 인구조사를 다윗의 실패로 규정한다. 저자는 다윗의 이런 실패를 숨기기 않고 사무엘기 하권의 부록에 실어놓았다. 사실 사무엘기 상하권을 읽어보면 다윗의 실패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무엘기 하권 11장은 다윗 임금이 충성스런 부하장교 우리야를 적군의 손을 빌어 죽이고 그의 아내 밧 세바를 차지한 사건을 전한다. 이에 나탄 예언자가 개입하여 다윗의 죄악과 잘못을 고발하자, 다윗은 하느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참회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 12,13). 이어서 친아들 압살롬이 임금 자리를 노리고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왕궁을 차지했지만 결국 다윗 군대에 패해 죽음을 맞았다. 이 역시 ‘다윗의 실패’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사냥할 때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5퍼센트라고 한다. 먹잇감을 향해 백 번을 달려가더라도 잡는 경우는 다섯 번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 5퍼센트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맹수들은 빠른 기동성과 용맹성을 갖췄는데도 왜 그렇게 많이 실패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육식동물은 짧은 시간에 먹이를 잡으려 하기 때문에 빨리 지치는 데다가 초식동물도 위기상황을 맞게 되면 자신을 방어하고 새끼를 보호하려고 공격적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이 95퍼센트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사냥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 아니라 놀이나 장난이 되어, 있는 힘을 다해 뛰면서 갖추게 되는 강인함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사자나 호랑이는 과식으로 비만이 되고, 현대인들처럼 맹수들도 성인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 비만에다 성인병까지 있으면 아무리 사자나 호랑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초식동물의 새끼 한 마리도 사냥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져 멸종할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맹수들의 사냥 성공률이 95퍼센트로 늘어난다면 그것은 도리어 맹수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서 백퍼센트 성공을 기대하고 노력하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사실 우리는 아주 작은 능력만으로 살아간다. 집, 자동차, 컴퓨터, 냉장고, 음식과 옷 어느 것 하나 내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할지라도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5퍼센트도 만들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맹수들이 사냥하는 것처럼 95퍼센트는 실패하고 5퍼센트만 성공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좌절하고 낙담해 살고 싶지 않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우리가 동물과 달리 실패할 때 더 많이 좌절하는 이유는 주어진 능력이 작은 것에 생명의 비밀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는 일마다 95퍼센트 또는 백퍼센트 성공한다면 자기도취, 자만자족에 빠져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요즘 세간에 넘쳐나는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는 식의 축복찬가, 성공찬가는 사람을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논리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박수와 환호를, 실패한 사람에게는 비난과 질책을 던지지만, 그것은 ‘실패의 비밀’을 모르는 세상의 논리일 뿐이다. 자기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해 성공을 거두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도 좋지만, 실패와 좌절을 통해 더 낮아지고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포용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묵상주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능력, 실패와 좌절에 오히려 감사하자.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체험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5일 연중 제5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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