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산책 구약] 판관기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살던 시대
여호수아기가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출발을 그려 보인다면, 판관기는 이스라엘의 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써 이스라엘의 이상을 사는 데 있어 거듭 실패합니다. 지파들간의 일치나 상호협력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처럼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형성되기 이전의 시간을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혼란의 시기로 묘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판관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4,14 참조)
판관들의 시대는 2,11-19이 보여주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 → 하느님의 심판(적들의 공격) → 이스라엘의 울부짖음 → 하느님의 응답(판관을 일으키심) → 이스라엘의 구원 체험 → 이스라엘의 죄’라는 패턴이 되풀이되는 시기였습니다. 판관기의 저자는 이런 도식적인 설명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거듭되는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판관들을 일으키시어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십니다. 판관기에는 12판관이 소개되는데 오트니엘, 에훗,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과 입타, 그리고 삼손은 대판관으로 분류되고, 톨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은 소판관으로 분류됩니다. 대소의 구분은 위대함의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판관을 소개하는 분량의 많고 적음에 따른 것입니다. 개별 판관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은 각 판관들의 위대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판관기의 저자가 이스라엘의 위인들을 칭송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은 개별 판관들의 면모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판관기의 저자는 오히려 판관들의 부족함을 과장하는 듯이 보입니다. 기드온도, 입타도, 삼손도 결코 완벽한 지도자들이 아닙니다. 여판관 드보라 시대 때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락 장군이 아니라 여성 전사였습니다. 이런 문학적인 장치들은 모두 승리가 누구를 통하여 가능한 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의 시대 때를 보십시오. 누구도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거나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하느님께서는 원하지도 않는 인물인 삼손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계획을 추진하십니다. 그러므로 판관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하는 주인공은 판관들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느님께 충실하지도 않습니다.
비상식과 혼돈으로 가득 찬 판관들의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17-18장의 미카의 가정 성소와 단의 성소 이야기, 19-21장의 기브아인들의 만행과 벤야민 지파와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판관기의 저자는 이 시기를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살던 때라고 말합니다.(17,6; 18,1; 19,1; 21,25) 세상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 세상에 구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어떤 지도자를 원하며,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일까요?
[2014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서울주보 4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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